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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하고 운영하는 HR에서,
전략과 결정의 중심에 서는 HR로.
멘토라이브러리 뉴스레터
“피터 드러커의 정체성은
‘교수’가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멘토라이브러리 대표 전준수입니다.
먼저, (주)링글이 주최한 웨비나 「AX 시대 HRD 전략」에 함께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웨비나는 멘토라이브러리의 파트너 멘토인 방병권 대표께서 연사로 참여하셨으며, 1,000여 분이 신청해 주실 만큼 많은 관심과 성원 속에서 뜻깊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웨비나 신청 과정에서 멘토라이브러리의 정보 수신에 동의해 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으로 첫 인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이 메일을 통해 AI, 인재경영, 리더십, 커리어에 대해 현장에서 얻은 경험과 생각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Peter Drucker는 자신의 정체성을 문필가(writer)라고 했다. 우리가 기억하는 그는 경영학의 아버지이자 저명한 대학 교수다. 하지만 그의 초기 커리어는 생각보다 평범했다. 그는 당시의 직장들을 ‘생계를 위한 일’이라고 했다.
무역상사 견습사원, 증권사 직원, 경제 및 해외뉴스 담당 기자, 펀드매니저, 영국 일간지의 미국 특파원을 거쳤고, 이후 50여 년 동안 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각 직장에서 해고되지 않을 정도의 실적은 올렸다.” 놀랍기도 하지만, 평범한 직장인들에게는 큰 위로와 희망이 되는 고백이다. 생계를 위해 하는 일과, 평생 쌓아가는 정체성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 직장은 목적이 아니었다. 글을 쓰기 위한 기반이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고, 직장생활 7년 차에 첫 저서를 출간했다. 이후 수십 권의 책과 수많은 논문을 남기며 한 시대를 바꾼 사상가가 되었다.
‘나는 HR이다.’ ‘나는 개발자다.’ ‘나는 마케터다.’ ‘나는 대표다.’
하지만 그것은 하는 일일 뿐, 정체성은 아닐 수도 있다.
정체성이 분명한 사람은 직장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직무가 달라져도 방향을 잃지 않는다. 한 해 한 해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방향으로 경험과 역량을 꾸준히 축적해 간다.
그래서 나는 직장인들과 함께할 때 가장 먼저 묻는다. “당신은 누구인가?” 무엇을 잘하는지보다,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가 먼저 정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더욱 확신하게 된다. 내가 하는 일은 서로 다른 일이 아니다. CEO들과는 인재경영을 고민하고, 리더들과는 리더십을 이야기하며, HR 전문가들과는 사람과 조직을 나눈다. AI를 통해 새로운 일의 방식을 함께 고민하고, 직장인들의 커리어를 돕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난 대표와 리더들은 청년 멘토가 되고, 어떤 기업은 청년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일터가 된다. 청년들은 그곳에서 성장하고, 시간이 지나 다시 다음 세대를 돕는 멘토가 된다.
이 모든 일은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내 정체성을 하나의 직함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나는 사회생태경영자다.
직함은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정체성은 평생 쌓여 간다.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아니,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가?
이 글에서 이야기한 질문을 조금 더 깊이 다루기 위해 진행하는 워크숍입니다. 이직이나 취업을 위한 클래스라기보다, 자신의 강점과 정체성, 그리고 앞으로의 커리어 방향을 함께 정리하는 시간입니다.
▶ 5C 커리어 워크숍 자세히 보기앞으로도 멘토라이브러리 뉴스레터를 통해 현장에서 얻은 경험과 생각을 꾸준히 나누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평가가, 정확히 반으로 갈렸다”
안녕하세요? 멘토라이브러리 대표 전준수입니다. 지난주 첫 번째 편지 「정체성」에 보내주신 관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직함보다 정체성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에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셨습니다.
지금은 많은 조직이 상반기 평가를 진행하고 있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두 번에 걸쳐 ‘평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평가를 받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한 통의 SOS
며칠 전, 최근 3년 평가가 좋지 않았던 한 팀 리더에게서 도움 요청을 받았다. 특히 리더십 평판 점수가 좋지 않았다. 자료를 받아 든 순간의 무거움은 이 일을 오래 해 온 내게도 익숙한 감정이다. 그런데 자료를 펼쳐 보니 예상과 다른 그림이 보였다.
점수가 낮은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평가가 정확히 둘로 갈려 있었다. 한쪽은 “남들이 놓치기 쉬운 리스크까지 챙겨 완성도를 압도적으로 끌어올린다.”고 평가했다. 반면 다른 한쪽은 “함께 일해본 적이 없어 판단하기 어렵다.”고 적었다. 같은 사람을 두고 나온 평가였다.
여러 문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반복됐다. 어떤 사람은 최하점을 줬고, 다른 사람은 매우 높은 점수를 줬다. 고르게 ‘보통’인 사람이라면 가운데 점수에 응답이 몰려야 한다. 그런데 이 리더는 여러 문항에서 최하점과 상위점이 함께 나타났다.
이때 눈여겨봐야 할 것이 최하점의 성격이다. 최하점은 열 번 중 한 번도 못 봤다는 뜻인데, 적은 인원인데도 여러 문항에서 이 최하점이 비슷한 비율로 반복해서 나왔다. 능력이 전반적으로 부족하다는 신호가 아니다. 특정 소수가 거의 모든 항목에 최하점을 일관되게 주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실제로 낮게 평가한 사람 상당수가 “긴밀히 일해본 적이 없어 구체적으로 쓰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접점이 적은 상태에서 낮은 점수가 나온 것이다.
점수가 아니라 분포를 보라
여기서 꼭 강조하고 싶은 첫 번째 통찰이 있다. 우리는 평가 결과를 볼 때 습관적으로 평균 점수부터 본다. 하지만 리더십처럼 관계가 성과를 좌우하는 평가에서는 평균보다 분포가 훨씬 중요한 정보다.
낮지만 고르게 나온 점수는 대개 역량과 행동의 문제다. 이 경우에는 스킬과 업무 습관을 개선해야 한다. 반면, 같은 평균이라도 점수가 크게 갈린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는 관계와 신뢰, 접점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필요한 것은 역량 개발보다 관계를 회복하고 신뢰를 다시 쌓는 일이다.
평균은 같아도 처방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런데 대부분의 평가 피드백은 이 차이를 구분하지 않는다. 이 리더에게도 필요한 것은 리더십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일이 아니었다. 신뢰가 충분히 닿지 못한 관계를 인정하고, 구성원과의 접점을 늘리며, 자신의 생각과 의도를 더 자주 보여주는 일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여러 문항에서 자신의 자기평가가 동료 평가보다 높았다는 것이다. 자신은 충분히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경험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리더의 의도가 아니라, 자신이 경험한 리더십을 평가한다. 의도는 마음속에 두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반복될 때 비로소 전달된다.
공정한 평가를 기대하지 마라
이제 이 사례를 넘어 더 근본적인 이야기로 간다. 왜 평가는 공정하기 어려운가?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은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룹 CHRO로 있던 시절, 과장 이상 승진 대상자들이 제출한 ‘기여 이익’을 모두 더하면 그룹 전체 실적과 거의 같았다. 매년 그랬다. 브리지워터의 레이 달리오 회장이 연말에 직원들에게 “올해 기여한 성과를 숫자로 적어내라”고 했더니, 그 합계가 실제 영업이익의 301%가 나왔다. 자기 과대평가는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값임을 증명한 사례다.
몇 년 전 잡코리아 조사에서 직장인의 70%가 성과평가에 불만족했고, 절반은 평가 후 퇴사를 고민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머서 조사에서는 구성원의 51%가 성과관리 제도가 조직에 아무 가치도 주지 못한다고 느꼈다.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인식하면서도, 우리는 연말만 되면 평가만큼은 공정하기를 바란다. 자연스러운 기대지만 현실은 다르다. 그리고 여기 역설이 있다.
빅터 프랭클의 말처럼, “자극과 반응 사이의 간극에는 언제나 선택이 있다.” 평가에 대한 태도는 결국 나의 선택이다.
단기 평가는 불공평해도, 장기 커리어는 공평하다
“모든 사람을 잠시 속일 수는 있어도,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링컨이 했다고 전해 내려오는 말인데 평가도 같다. 핵심은 이 한 문장이다. 성과는 사실(Fact)이고, 평가는 의견(Opinion)이다.
의견은 언제든 바뀌지만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평가는 결국 사실에 수렴한다. 단기적으로는 상사가 나를 잘 모를 수 있고, 조직 정치가 개입될 수 있고, 시장이 불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실제 성과와 역량은 승진도, 이직 경쟁력도, 개인 브랜드도, 커리어 10년의 방향도 바꾼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평가 준비가 아니라 성과 설계와 실행이다.
평가보다 강한 것, 일의 의미
평가자의 시선을 기준으로 일하는 사람은 늘 불안과 비교 속에서 흔들린다. 여기서 등장하는 더 강력한 기준이 일의 의미감이다.
미국 Blind 조사에서 직장인의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워라밸(31.3%)이나 복지(23.8%)가 아니라 일의 의미(66.3%)였다. 셀리그만의 긍정심리학 연구도 사람들은 일의 의미가 분명하다면 연봉의 23%까지 포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의미가 분명한 사람은 평가 결과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평가자는 매년 바뀌지만, 내가 추구하는 의미는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나는 회사에 고용된 사람이다’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소중했고, 무엇보다 내 생각까지 회사 안에 갇힐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회사를 장학금을 받으며 다니는 인생의 학교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바라보니 배우는 것에 더 집중하게 되었고, 월급은 당연한 대가가 아니라 배움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받는 장학금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급여에 대한 감사도 자연스럽게 커졌다.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은, 평가 시즌에 준비하지 않는다
평가 시즌이 되면 갑자기 메모를 정리하고 성과를 포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진짜 높은 평가를 받는 사람들은 시즌에 준비하지 않는다. 이미 1년 내내 원온원 피드백을 받고, 목표 대비 진척을 점검하고,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현장에서 팀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좋은 기획자가 데이터에서 새 사실을 발견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얻은 통찰을 숫자로 확인하듯, 평가도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평가 시즌은 새 이야기를 만드는 시간이 아니라, 한 해의 과정을 사실로 확인하는 절차다. 이 관점을 가지면 평가 시즌은 스트레스가 아니라 한 해를 의식적으로 마무리하는 시간이 된다.
맺으며
다시 그 리더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나는 그에게 “억울하다”로 끝내지 말자고 했다. 일부 동료와 끝내 신뢰를 쌓지 못한 것도 리더가 돌아봐야 할 결과다. 그 책임의 일부는 분명 본인에게 있다. 하지만 그것은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은 아니다. 데이터를 제대로 읽으면 고쳐야 할 것과 인정해야 할 것, 그리고 앞으로 바꿔야 할 것이 분명하게 보인다.
평가는 우리의 감정을 흔들 수는 있어도, 우리의 커리어를 결정하지는 못한다. 커리어를 결정하는 것은 의미 있는 목표와 지속적인 성과,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다. 평가에 휘둘리는 사람은 해마다 흔들리지만, 성과를 스스로 설계하는 사람은 자신의 커리어 전체를 움직인다.
당신의 평가가 낮은가? 아니면 평가자에 따라 엇갈리고 있는가? 둘은 전혀 다른 문제다. 평가가 낮다면 부족한 점을 돌아봐야 한다. 하지만 평가가 엇갈린다면, 나의 강점과 성과가 어떤 환경에서 제대로 드러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HR도 평균 점수만 볼 것이 아니라, 왜 평가가 엇갈렸는지를 먼저 읽어야 한다.
평가는 사람을 심판하는 제도가 아니다. 사람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성장을 돕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오늘의 문장다음 편지 예고 — Vol.3 · 평가
오늘은 평가를 받는 사람의 이야기를 했다. 다음 편지에서는 시선을 개인에서 조직으로 옮겨보려 한다. 왜 개인의 점수를 아무리 정교하게 매겨도 조직의 성과는 오르지 않을까? 그리고 AI 시대에는 왜 이 질문이 더욱 중요해질까?
다음 편지 「점수를 매기지 말고, 구조를 설계하라」에서는 성과를 만드는 조직의 평가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마지막으로, 평가 때문에 깊은 고민에 빠져 나를 찾아왔던 한 리더에게 내가 전했던 답도 함께 나누려 한다.
앞으로도 멘토라이브러리 뉴스레터를 통해 현장에서 얻은 경험과 생각을 꾸준히 나누겠습니다. 다음 편지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점수를 매기지 말고, 구조를 설계하라”
안녕하세요? 멘토라이브러리 대표 전준수입니다. 지난 편지 「좋은 평가가, 정확히 반으로 갈렸다」에서는 평가를 받는 개인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평가는 흔들 수 있어도 커리어를 결정하지 못하며, 단기 평가는 불공평해도 장기 성과는 배신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뒤집습니다. 개인이 평가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면, 조직은 애초에 사람을 흔드는 평가가 아니라 성장시키는 구조를 설계해야 하지 않을까요? 평가를 하는 HR과 리더의 이야기, 평가 2부작의 마지막 편입니다.
먼저 결론부터 말한다.
이 글은 네 개의 질문을 따라간다. 지금의 성과관리는 왜 구조적으로 실패하는가? AI가 들어오면 이 문제는 어떻게 더 복잡해지는가? 개인 평가에서 집단 생산성으로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 그리고 그 재설계에서 HR과 리더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금의 성과관리는 왜 실패하는가?
공정과 공평은 목적이 아니라 필요조건이다
성과평가를 이야기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 “공정해야 한다”다.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목적이 되는 순간 문제가 시작된다. 조직의 모든 에너지가 더 공정하게 평가하는 법을 찾는 데 쏠리고, 정작 사람을 코칭하고 성과를 만드는 시간은 줄어든다.
한 중견기업이 처음으로 평가 제도를 도입한 적이 있다. KPI를 정하고 월·분기·반기 체계를 셋팅했다. 6개월 뒤, 관리자들은 등급 기준을 맞추는 데 시간을 쏟았고 코칭 시간은 오히려 줄었다. 1년 후 실적은 떨어졌고, 로열티도 낮아졌고, 팀워크도 예전 같지 않았다. 평가 제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목적이 흐릿한 채 형식부터 갖춘 것이 문제였다.
한 국내 채용 플랫폼의 2024년 조사에서도 직원 57.1%가 인사평가 결과를 신뢰하지 않았고, 그 이유 1위는 상급자의 주관적 평가였다. 10명 중 8명은 평가 때문에 이직을 고민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갤럽은 팀 간 몰입도 차이의 약 70%가 관리자에 의해 설명된다고 보고한다. 결국 성과를 만드는 것은 평가 양식이 아니라 평가자의 리더십이다. 더군다나 리더에 따라 평가에 후한 사람도 있고, 박한 사람도 있다. 중간에 수렴하게 평가하고 맨 위와 아래는 적게 가져가려는 리더, 심지어는 그 평가를 자기 상사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책임을 회피하는 최악의 리더도 있다.
개인 성과의 합은 조직 성과가 아니다
‘개인 성과를 잘 관리하면 조직 성과가 나온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비현실적인 생각이다. 성과는 1차 함수가 아니다. A팀 성과가 곧 A1, A2, A3 점수의 합인 것이 아니다. 팀원 간 화학반응, 리더의 방향 제시, 외부 환경, 협업의 질이 결합된 결과다.
지난 편지에서 본 그 숫자를 기억할 것이다. 브리지워터에서 직원들이 적어낸 기여 성과의 합은 실제 영업이익의 301%였다. 다만 놓치지 말아야 할 균형점이 있다. 성과의 초점은 조직 전체에 두더라도, 구성원에게 다가갈 때는 철저히 개인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기부여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중요한 지점이다.
연간 평가라는 구조적 한계
미군에는 ‘지휘관의 의도’라는 개념이 있다. 어떤 계획도 적과 만나면 쓸모없어지기 때문에, 목적과 최종 상태만 정하고 판단은 최전선에 맡긴다. 권투선수 타이슨도 비슷하게 말했다.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이 있다. 한 대 처맞기 전까지는.”
연초에 세운 목표를 연말에 평가하는 방식은 현실과 점점 멀어진다. GE조차 상대평가의 대명사였다가 절대평가로, 다시 실시간 성과관리로 주기를 바꿨다. 고정된 연간 평가로는 급변하는 현실을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들이 연간 계획이 아니라 반기, 분기별 계획에 더 초점을 두기도 한다. 아예 연간 평가를 없앤 기업들도 있다. 그렇다고 계획을 세우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오래전 GE는 18개월 단위로 계획을 세워 연말 평가에 쏠리고 왜곡되기 쉬운 오류들을 막았다.
AI 시대, 문제가 복잡해지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의 큰 변수가 생겼다. 바로 AI다. 많은 조직이 오해한다. AI를 도입하면 평가가 더 객관적이고 생산성도 오를 것이라고. 근본 문제를 그대로 둔 채 AI를 얹으면 세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 잘못된 기준이 더 빠르게 강화되고,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의 격차가 더 빠르게 벌어지며, 불공정한 평가를 AI가 집행하면 직원은 시스템 자체를 불신한다.
세 가지 환상을 짚고 싶다. 첫째, AI를 도입하면 생산성이 자동으로 오른다는 환상. 갤럽 2025년 조사에서 AI를 주 1회 이상 쓰는 직원은 26%뿐이었다. 1950년대 세탁기가 주부를 가사에서 해방했다는 증거가 없듯 도구는 저절로 생산성을 만들지 않는다.
둘째, AI로 평가가 더 객관적이 된다는 환상. AI는 귀납적 데이터로 움직인다. 인풋이 편향되면 아웃풋도 편향된다. 게다가 경제도 평가도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 먼저 움직인다.
셋째, AI로 인력을 줄이면 생산성이 오른다는 환상. 에이스에게 일이 몰리고, 정작 AI를 잘 쓰는 직원이 이직 1순위가 되는 역설이 벌어진다. 자신이 없어질 미래를 위해 충성할 사람은 없다.
같은 기업 안에서도 AI를 잘 쓰는 사람과 못 쓰는 사람의 성과 차이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빠르게 벌어진다. 생산성은 자원의 투입과 관련되어 있는데 AI가 자원 제약의 상당 부분을 해결했다. 잘하는 사람은 AI를 더 잘 활용하고 더 많은 성과를 내게 한다. 그래서 AI 시대에 던질 질문도 바뀌어야 한다. ‘이 사람이 올해 무엇을 달성했는가’가 아니라, ‘이 사람이 AI 시대에 조직의 생산성을 어떻게 높였는가’로.
개인 평가에서 집단 생산성으로
진단이 분명하면 처방도 분명해진다. 세 축을 동시에 옮겨야 한다. 평가 단위는 개인에서 팀·조직으로. 평가 주기는 연간 고정에서 상시 조율과 피드백으로. 핵심 질문은 ‘누가 가장 잘했는가’에서 ‘누가 성과가 나는 구조를 만들었는가’로.
특히 노동시장 경직성이 높은 한국에서는 평가 결과를 개인 인사 조치로 연결하는 데 제약이 많다. 결국 성과관리는 개인 등급을 매기는 데 머물기보다, 팀과 조직의 생산성을 어떻게 높일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중기·장기 평가에 무게를 두라
단기 성과는 우연과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지만, 중기·장기 성과는 결국 실력을 드러낸다. 가트너 조사에서 HR 리더의 82%가 현재 성과관리가 본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문제는 공정성이 아니라 유용성이었다.
피터의 법칙을 떠올려 보자. 사람은 자신의 무능이 드러나는 자리까지 승진한다. 성과와 역량을 같은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높은 성과는 역량의 결과일 수도, 전임자의 기반과 시장, 경쟁사의 실수 덕일 수도 있다. 둘을 구분하지 못하면 승진은 운까지 평가하는 일이 된다. 맥킨지 연구도 같은 결론이다. 성과만 보는 기업보다 성장과 역량을 함께 관리한 기업이 장기적으로 더 높은 매출 성장과 더 낮은 이직률을 기록했다.
집단 생산성을 설계하라
AI로 생산성 차이가 커지면 조직엔 세 선택지가 있다. 방치하거나, 모두를 평균에 맞추거나, 개인의 차이를 조직의 성과로 전환하거나. 앞의 둘은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설계할 것은 세 번째다. 어제 한 사람의 탁월함이 오늘 조직의 표준이 될 때, 평범한 사람도 비범한 성과를 낸다.
맥킨지의 경쟁력도 여기 있다. 전 세계 프로젝트의 경험을 체계적으로 아카이브하고 매번 다시 활용한다. 개인의 경험이 조직의 자산이 되는 구조다. 거창할 필요도 없다. 직무별로 효과적인 프롬프트 30개만 정리해 공유해도, 같은 AI를 쓰며 생기는 성과 차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리더는 집단 생산성의 설계자다
AI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성과의 최종 책임은 리더에게 있고, 구성원의 성과와 몰입을 결정하는 가장 큰 변수는 직속 관리자라는 점이다. 갤럽의 2026년 연구는 이를 수치로 보여준다. 관리자가 팀의 AI 활용을 적극 지지한다고 느끼는 직원은 그렇지 않은 직원보다 AI를 주 1회 이상 쓸 가능성이 약 1.7배, AI가 자기 강점을 더 잘 발휘하게 돕는다고 답할 가능성이 7.4배, AI가 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꿨다고 답할 가능성이 8.7배 높았다. AI 도입의 성패는 기술보다 관리자의 태도와 행동에 달려 있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로 움직인다. 갤럽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관리자의 몰입도는 계속 하락했고, 이는 전체 직원 몰입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이다. 관리자가 흔들리면 팀이 흔들리고, 팀이 흔들리면 AI 투자도 성과를 내기 어렵다. 가장 먼저 챙겨야 할 대상이 관리자인 이유다.
그래서 설계할 것은 네 가지로 압축된다. 고성과자의 AI 활용법을 조직 자산으로 축적하는 베스트 프랙티스 아카이브, “AI를 써라”가 아니라 “이 업무는 이렇게 AI를 쓰면 된다”로 안내하는 활용의 조직 확산, 역량 편차와 무관하게 일관된 성과를 내게 하는 반복 가능한 SOP, 그리고 잘하는 사람이 가르치며 다시 성장하는 사내 학습 커뮤니티다.
이제 개인의 점수표를 대신할 질문은 이런 것들이다. 우리 팀의 성과 수준은 지난해보다 높아졌는가? 뛰어난 개인의 업무 방식이 조직의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는가? AI를 활용한 일하는 방식이 팀 전체로 확산되고 있는가? 리더는 이전보다 더 자주 피드백하고 코칭하는가? 성과와 성장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는가?
다시, 한 사람의 이야기로 — 그 리더에게 건넨 답
여기까지가 조직과 시스템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 편지를 시작하게 만든 것은 사실 한 사람이었다. 지난 편지에서 소개한, 평가가 정확히 반으로 갈렸던 그 팀 리더다. 평가 결과를 받아 들고 깊은 고민에 빠져 나를 찾아왔던 그에게, 나는 한 편의 정리된 답을 건넸다. 조직의 이야기가 결국 한 사람에게서 시작되고 한 사람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그 답의 구성을 여기 나눈다.
나는 그에게 먼저 이렇게 말했다. 이 답을 HR 임원이나 대표에게 보고하는 형식으로 정리해보자고. 그리고 의논하면서 글의 순서를 이렇게 잡았다.
첫째 — 감사와 자기 성찰을 맨 앞에 둔다. 가장 먼저 담은 것은 방어가 아니라 감사였다. 동료와 후배들이 시간을 들여 남겨준 피드백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스스로 어떤 점을 고치겠다는지를 앞세웠다. 마이크로 매니징을 줄이고, 권한을 과감히 넘기고, 변화에 더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다짐이 먼저 나왔다. 자기 성찰이 앞서야, 상사와의 대화가 비로소 열린다.
이것은 단순한 처세가 아니다. 평가 결과를 억울함으로 받으면 대화가 닫히고, 배움으로 받으면 대화가 열린다. 순서를 바꾼 것만으로 같은 내용이 전혀 다르게 읽힌다.
둘째 — 그 다음에 회사와 상의할 것을 정리한다. 자기 성찰을 앞세운 뒤에야, 구조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 리더는 정식 팀장이 아니라 팀장 대행이었다. 인사권도 위임 근거도 뚜렷하지 않은 상태에서 책임만 지는 자리였다. 조직개편으로 윗선이 대거 바뀌며 일부 구성원과는 신뢰를 쌓을 시간도 부족했다. 평가가 두 갈래로 갈린 것도 이 맥락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에게 이렇게 정리하게 했다. 이번 결과는 세 가지가 겹친 것이라고. 내가 실제로 고쳐야 할 과제, 평가가 갈린 관계 신호, 그리고 권한 없는 대행이라는 구조. 첫째는 스스로 고치겠다고 밝히되, 둘째와 셋째는 회사가 함께 봐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고칠 것과 상의할 것을 분리하는 것, 이것이 감정이 아니라 데이터로 대화하는 방법이다.
셋째 —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강점으로 승부한다. 여기까지는 사실 누구나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이 리더에게 정말 전하고 싶었던 것은 그 다음이었다. 데이터를 오래 들여다보다 한 가지가 분명해졌다. 이 리더의 강점은 꼼꼼함과 책임감, 리스크를 끝까지 챙겨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힘이었다. 반대로 약점으로 지적된 것은 넓게 위임하고, 변화를 선제하고, 팀을 크게 이끄는 부분이었다.
강점과 약점의 성격이 뚜렷이 갈렸다. 이 사람은 제너럴 리더가 아니라, 스페셜리스트에 가깝다. 세세하게 챙기는 성향은 팀을 넓게 이끄는 리더 역할에서는 흠이 된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완성하는 핵심 과제에서는 오히려 품질을 지키는 결정적인 힘이 된다.
그렇다면 답은 분명하다. 약점을 억지로 메워 평균적인 리더가 되려 애쓰기보다, 큰 과제 하나를 깊이 책임지고 끝내 더 크게 기여하는 자리로 옮기는 것이다. 팀을 이끄는 일은 실권을 가진 정식 리더에게 맡기고. 그래서 나는 그에게, 이 방향까지 리더와 함께 이야기해보라고 권했다. ‘리더십이 부족하니 물러난다’가 아니라, 내 강점이 조직에 가장 크게 닿는 자리를 찾는다는 뜻으로. 결국 직장이든 인생이든, 우리는 자신의 강점으로 승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조직의 이야기다
여기서 멈추면 개인의 처세로 끝난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이 리더가 강점을 제대로 쓰지 못한 것은 온전히 개인의 탓이 아니다. 스페셜리스트에 맞는 사람을 제너럴 리더의 자리에, 그것도 권한 없는 대행으로 앉힌 것은 조직의 배치였다.
앞에서 이야기한 집단 생산성의 설계란 바로 이런 것이다. 사람을 평균에 맞춰 부족한 곳을 메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강점이 가장 크게 발휘되는 자리에 배치하는 것.
한 사람의 평가가 갈렸다는 신호를 ‘그 사람의 문제’로 닫아버리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이 사람을 제자리에 두었는가’라는 질문으로 열면, 그것은 곧 조직 설계의 문제가 된다. 피터 드러커가 배치(Placement)를 동기부여의 1번 우선순위라고 본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한 사람의 평가 문제는, 그를 어디에 두었는가라는 조직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개인과 조직은 결국 하나의 이야기다. 개인은 자신의 강점을 알고 그것으로 승부해야 하고, 조직은 그 강점이 가장 크게 쓰이도록 자리를 설계해야 한다. 이 둘이 만날 때, 평가는 사람을 심판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을 제자리에 데려다놓는 나침반이 된다.
맺으며
성과관리를 다시 설계한다는 것은 평가제도를 조금 더 정교하게 다듬는 일이 아니다. 사람이 성장하고, 그 성장이 자연스럽게 성과로 이어지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2023년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가 15개국 1,800여 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사람과 성과를 함께 관리한 기업은 재무만 중시한 기업보다 매출 성장률이 약 두 배였고(8% 대 4%), 이익 변동성은 절반, 이직률은 약 5%p 낮았다. 사람을 중시하면 성과가 희생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함께 관리한 기업이 더 빠르게 성장했다.
AI는 개인의 생산성을 높일 수는 있어도, 집단의 생산성까지 높여주지는 않는다. 그것은 HR과 리더가 함께 설계해야 할 영역이다. 당신의 조직은 점수를 매기고 있는가, 구조를 설계하고 있는가? 이번 평가 시즌, 개인의 등급을 정교하게 나누는 데 시간을 쓸 것인가, 아니면 팀 전체의 생산성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구조를 만드는 데 쓸 것인가? 두 번의 편지를 관통하는 질문은 결국 하나였다. 우리는 사람을 흔들고 있는가, 성장시키고 있는가?
오늘의 문장이번 평가 2부작이 여러분의 평가 시즌에 작은 관점 하나를 더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도 현장에서 얻은 경험과 생각을 꾸준히 나누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회의실에 HR은 없었다”
안녕하세요? 멘토라이브러리 대표 전준수입니다. 지난 두 편의 편지에서는 ‘평가’를 이야기했습니다. 개인은 평가에 휘둘리지 말고 성과를 설계하라, 조직은 점수를 매기지 말고 구조를 설계하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보내주신 답장과 질문들, 하나하나 감사히 읽었습니다.
오늘부터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찾아뵙습니다. 9월 출간을 앞둔 제 책 『HRBP의 시대』의 원고를 여섯 편으로 나누어, 뉴스레터에 맞게 다시 써서 보내드리려 합니다. 그 첫 번째 편지입니다.
다만 이 연재를 HR 담당자만의 이야기로 쓰지는 않겠습니다. 사실 이 여섯 편이 다루는 질문은 이렇습니다. 나는 왜 결정이 내려지는 자리에 초대받지 못하는가. 내가 하는 일은 왜 성과로 기록되지 않는가. 어떻게 하면 지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판단하는 사람이 되는가. HR이 아니어도, 재무·기획·마케팅·현장 어디에 계시든 한 번쯤 마주쳤을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HRBP는 그 질문에 가장 먼저, 가장 정면으로 부딪힌 직무일 뿐입니다.
오전에 퇴사를 결심한 직원을 만난다. 그동안의 이야기를 듣고, 설득하고, 붙잡아 보려 한다. 그러다 보면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손을 쓸 수 있었을 텐데, 이미 마음이 떠난 뒤에 부서장의 요청으로 나간 자리다. 그렇게 중요한 인재를 붙들었다고 해서, 그것이 성과로 기록되지는 않는다.
오후에는 직장 내 괴롭힘 이슈가 터진다. 문제 하나가 해결되기도 전에 다음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어느덧 퇴근 시간이 가까워진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오늘 무엇을 한 걸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 적이 있다면, 이 글은 당신을 위해 쓴 것이다.
같은 날, 다른 방에서
그날 회사의 다른 방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CEO가 임원진과 내년 전략을 짠다. 그 자리에 HR은 없다. 한 사업부 리더가 조직개편을 결정한다. 그리고 결정이 끝난 뒤에 HR에 통보한다. 채용이 필요하면 우리를 찾는다. 평가 시즌이 되면 우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정작 사업의 방향이 결정되는 순간에는 우리가 빠져 있다.
한 가지가 더 있다. 사업부 리더가 조직 이슈를 느끼면서도 HR에 연락하기를 머뭇거리는 순간이다. ‘말해봤자 달라지는 게 없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고 팀 안에서 알아서 처리한다. 한 달만 먼저 공유되었어도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문제들이, 그렇게 곪은 다음에야 마지막 수단처럼 우리에게 온다.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이것이 나 혼자의 체감인지, 아니면 구조적인 현상인지 숫자로 확인해 보자. 딜로이트의 글로벌 인적자본 트렌드 조사에 따르면, HR이 사업 전략에 의미 있게 기여한다고 답한 경영자는 전체의 25%다. 더 아픈 숫자가 있다. HR 이슈가 전략적 아젠다로 다뤄진다고 응답한 비율은 5%다. 경영자 100명 중 95명이 HR을 전략 파트너로 보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직원 쪽은 어떨까? 에델만 신뢰도 조사에서 직원의 다수가 HR 조직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가장 큰 이유는 “HR이 결국 경영진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한다”는 인식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역량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흔한 결론으로 가기 쉽다. “HR 담당자들이 사업을 잘 몰라서” 혹은 “역량이 부족해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HR이라는 기능이 설계된 방식에서 나오는 구조의 문제다.
기존 HR의 과업은 매우 정교하게 정의되어 있다. 확보(채용), 개발(교육), 보상(임금·복지), 통제(평가), 유지(몰입·문화), 이동(배치·승진), 퇴직. 하나하나 다 중요하다. 그런데 이 설계에 빠져 있는 질문이 하나 있다.
이 질문이 빠지는 순간, HR은 운영 조직이 된다. 각 기능을 다 잘한다고 해서 최종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모든 과정이 좋다가도 하나가 삐끗하면 결과는 나오지 않는다. 그것이 비즈니스다. 피터 드러커는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말했다. 피드백, 그리고 과업의 재정의. 지금 HR의 과업 체계는 ‘어떻게 잘 할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경영자가 원하는 것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함께 판단해 줄 파트너다.
그리고 언어의 문제
여기에 하나가 더 겹친다. 경영자와 HR이 쓰는 언어가 다르다는 것이다.
| HR의 언어 | 경영자의 반응 | 필요한 전환 |
|---|---|---|
| “조직문화가 중요합니다” | “그래서 매출이 얼마나 늘어납니까?” | 사업 영향으로 말하라 |
| “구성원 몰입이 필요합니다” | “비용은 얼마나 줄어듭니까?” | 숫자로 증명하라 |
| “리더십 개발이 필요합니다” | “언제 결과가 나옵니까?” | 타임라인을 제시하라 |
이 표가 보여주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의 차이가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방식 자체가, 경영자로 하여금 우리를 ‘지원 기능’으로 인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경영자가 HR에게 원하는 답은 세 가지다. 이 활동이 사업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그 결과가 숫자로 어떻게 나타나는가? 언제까지 어떤 변화가 생기는가? 이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HR은 지원 부서가 아니라 성과 파트너가 된다.
나는 마트로 들어갔다
내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 이랜드 그룹 CHRO로 있을 때, 마트 사업부의 조직 재설계 프로젝트를 맡았다. 그때 내가 처음 한 일은 HR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트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팀원 세 명과 함께 3주 동안 완전히 몰입했다. 매장에서 일하면서 고객이 어디서 멈추고 어디서 지나치는지 동선을 직접 관찰했다. 농산, 수산, 축산, 공산 매대 뒤에 직접 서서 물건을 팔았다. 물류 창고를 방문하고, 매장 후방 창고에서 밤새워 상품을 받고 새벽 일찍 진열도 했다. VIP 고객 몇 분의 가정을 방문해 냉장고를 함께 열어보기도 했다. 냉장고 속에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고객이 무엇을 사고, 무엇을 아끼고, 어디서 구매하는지가 냉장고 안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 3주가 끝났을 때, 비로소 마트가 어떤 비즈니스인지 알게 되었다. 어떤 리더를 세워야 하는지, 무엇을 평가해야 하는지, 어떻게 동기부여해야 하는지, 조직 구조는 어떻게 짜야 하는지. 이 모든 것이 현장에서 나왔다. 책상 위에서는 나오지 않았을 답이었다.
이것은 CHRO였기 때문이 아니다
이 이야기를 하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건 CHRO니까 가능했던 거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3주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직위 때문이 아니라, 그 3주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판단은 직급과 무관하다.
자신이 지원하는 사업부의 현장에 직접 들어가는 것. 숫자 이면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이것은 HR 실무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3주가 어렵다면 3일이라도, 3일이 어렵다면 반나절이라도 좋다.
맺으며
허먼밀러의 전 회장 맥스 드프리는 이렇게 말했다. “지도자의 첫 번째 책임은 현실을 규명하는 것이다.” HR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왜 신뢰받지 못하는지, 그 구조적 이유를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이 출발점이다.
이번 주 질문 하나경영자나 사업부 리더에게 이 질문을 한번 던져보라. 답을 듣고, HR이 그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해 보라. 연결점이 보이지 않는다면 — 그것이 우리가 그 회의실에 없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문장다음 편지 예고 — Vol.5 · 연재 ②
다음 편지에서는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겠다. 사업부장이 “한 명 더 뽑아주세요”라고 했을 때, 그 한마디에 어떻게 답하느냐가 무엇을 가르는지에 대해서다. 같은 요청을 받아 적는 사람과, 그 요청의 진짜 문제를 다시 정의하는 사람. 둘은 같은 자리에 있어도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HR이 아닌 분들께도 이 여섯 편이 ‘내 일의 위치’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읽으시면서 떠오르는 생각이나 반론이 있다면 답장으로 알려주십시오. 다음 편지에 반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명 더 뽑아주세요”
안녕하세요? 멘토라이브러리 대표 전준수입니다. 지난 편지에서는 ‘그 회의실에 HR은 없었다’는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얼마 전, 뉴스레터를 읽고 도전을 받았다며 찾아오신 분이 있었습니다. 마주 앉아 나눈 이야기가 오래 남았습니다. 그동안 여러 경험을 쌓아왔는데, 정작 자신이 어떤 차별화된 역량을 갖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고민이 다음 커리어와 성장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질문이 아주 중요한 자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답은 의외로 거창한 곳에 있지 않습니다. 매주 반복되는 아주 평범한 요청 하나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 요청은 매주 어딘가에서 반복된다. 사업부장이 찾아와 말한다. 일이 많다고, 사람이 부족하다고, 이대로는 안 된다고. 여기서 대부분의 대화는 이렇게 이어진다. “네, 어떤 분이 필요하신가요? JD 주시면 공고 올리겠습니다.”
틀린 답은 아니다. 요청을 받았고, 처리했다. 그런데 이 한 번의 응답에서 이미 갈린다.
같은 요청, 다른 질문
HRBP는 문제를 다르게 본다. 따라서 같은 상황에서 묻는 질문이 서로 다르다.
| 상황 | 일반 HR의 질문 | HRBP의 질문 |
|---|---|---|
| 채용 요청이 왔을 때 | “이 포지션에 어떤 스펙이 필요합니까?” | “이 채용이 사업에 어떤 변화를 만들 것인가?” |
| 성과가 낮은 팀이 있을 때 |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드릴까요?” | “성과를 막고 있는 구조적 원인은 무엇인가?” |
| 리더십 문제가 제기될 때 | “리더십 교육을 신청해 드릴까요?” | “이 리더가 변화 가능한가, 구조적 결정이 필요한가?” |
왼쪽 질문은 요청을 정확하게 처리하기 위한 것이다. 오른쪽 질문은 요청이 맞는지를 함께 확인하기 위한 것이다. 채용 요청이 오면 HRBP는 먼저 이 질문들을 던진다. 왜 지금 이 인재가 필요한가. 이 채용이 사업 전략의 어느 부분을 실현하는가. 이 인재가 들어오면 조직 구조가 어떻게 달라지는가.
결국 한 걸음 더 들어가는 것이다. “누가 필요합니까”라는 질문에서 “어떤 조직을 만들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으로. 이 질문 하나의 차이가 채용의 수준을 바꾼다. 요청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요청 뒤에 있는 사업의 필요를 먼저 읽는 것이다.
요청을 그대로 받아 적으면 생기는 일
요청대로 뽑았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상당수 인사 전문가들은 경력자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확률이 33%를 채 넘지 않는다고 말한다. 중요한 자리에 발탁되거나 승진했을 경우에도 대체로 비슷하다.
세 명을 뽑으면 한 명이 자리를 잡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대개 채용 자체에만 집중한다. 뽑는 순간까지가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젊은 창업자가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CTO로 영입한 일이 있었다. 글로벌 기업 임원 출신, 최고 학부 졸업, 대표보다 높은 급여 — 스펙만 보면 더할 나위 없는 채용이었다. 6개월이 지나자 조직이 두세 팀으로 나뉘기 시작했다. 대표를 대하는 태도도 처음과 달라져 있었다. 결국 결별할 수밖에 없었다.
스펙이 좋은 사람을 뽑는 것과, 우리 조직에 맞는 사람을 뽑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경영자를 설득하는 숫자
반대의 경우도 있다. 채용이 정말 필요한데 경영자가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다. 부서장은 채용을 요청하지만 경영자는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경영자가 채용의 중요성을 몰라서 미루는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의 사업 문제가 더 급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간극을 좁히는 열쇠는 하나다. 경영자의 언어 — 숫자와 시나리오 — 로 말하는 것이다. 경영자는 이사회에 결과로 평가받는 사람이다. 감이 아니라 근거로 움직인다.
① 그 자리가 비어 있는 동안의 비용
| 항목 | 공식 / 예시 |
|---|---|
| 공백 비용 | 해당 포지션의 월 매출 기여도 × 공백 예상 개월 수 + 기회비용 |
| 예시 | 영업 핵심 인력 월 기여 매출 5,000만 원 × 공백 3개월 = 최소 1억 5,000만 원 (팀 생산성 저하·기회비용 미포함) |
“채용이 급합니다”는 의견이다. “이 자리가 석 달 비면 최소 1억 5,000만 원입니다”는 의사결정 근거다. 같은 말인데 경영자에게 도착하는 방식이 다르다.
② 그 사람이 나갔을 때의 비용
의외로 많은 경영자와 인사담당자가 채용 비용은 계산하면서 이직 비용은 과소평가한다. 갤럽(Gallup)은 직원 한 명을 대체하는 비용이 연봉의 50%에서 200%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직급별 추정치는 이렇다.
| 직군 | 대체 비용 (연봉 대비) |
|---|---|
| 현장직 (Frontline) | 약 40% |
| 전문직·기술직 | 약 80% |
| 리더·관리자 | 약 200% |
리더 한 명이 떠나면 채용 비용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생산성 저하, 온보딩 비용, 조직 지식의 유출, 고객 관계의 단절, 의사결정 공백까지 함께 발생한다. 그래서 핵심 인재의 이탈은 비용이라기보다 경영 손실에 가깝다.
디자이너들이 성과를 못 낸 진짜 이유
내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 아동복 사업부 경영자로 있을 때였다. 디자이너는 외부 영입이 많았다. 시장과 브랜드에서 디자인과 상품력이 검증된 인재들을 많이 뽑았다. 그런데 6개월, 1년이 지나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는 경우가 의외로 적었다.
경력 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면담을 진행했다. 이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뜻밖에도 ERP, 즉 전사적 자원관리 프로그램이었다. 몇 해 전 도입한 글로벌 ERP 시스템이 패션 사업에 최적화되지 않았고, 디자이너들이 입력할 내용이 너무 많았다. 1~2년 사용해본 기존 직원들은 숙달되었지만, 외부 시장에서 디자인만 하다 온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이었다.
해결 방법은 간단했다. 처음 입사한 디자이너들을 위해 별도의 교육 공간에 데스크톱을 설치하고 2~3일 집중 학습을 하게 했다. 그랬더니 시스템 때문에 어려워하던 불만이 사라졌다. 사람을 잘못 뽑은 것이 아니었다. 조직이 그 사람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좋은 채용이란
웨비나에서 이런 질문이 나왔다. “좋은 채용이란 무엇인가요?” 단순하지만 생각해볼 만한 질문이다. 판단 기준은 세 가지다.
첫째, 사업 전략과 연결된 채용이어야 한다. 지금 왜 이 인재가 필요한지, 이 채용이 어떤 사업 목표를 실현하는지 명확해야 한다. 요청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의 다음 단계를 위한 선택이어야 한다.
둘째, 채용 이후가 설계된 채용이어야 한다. 입사 후 90일, 180일 동안 어떻게 성과를 낼 것인지 경로가 그려져 있어야 한다.
셋째, 경영자가 안심하는 채용이어야 한다. 온보딩 계획, 초기 성과 트래킹, 리스크 대응 시나리오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중 둘째와 셋째는 채용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다음에 일어나는 일을 가리킨다. 채용을 점이 아니라 선으로 보는 시각이다. 입사일 하루가 아니라, 그 사람이 조직 안에서 첫 성과를 내는 순간까지를 하나의 과정으로 설계하는 것이다. 채용 담당자가 빠르게 HRBP의 관점을 갖게 되는 것도 이 지점에서다.
맺으며
다시 이 요청으로 돌아가 보자. “한 명 더 뽑아주세요.” 이 한마디에 “네, 공고 올리겠습니다”라고 답하면 우리는 채용 담당자다. “이 채용이 사업의 무엇을 바꿉니까”라고 되물으면, 그때부터 우리는 함께 판단하는 사람이 된다.
되묻는 것은 요청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다. 요청을 더 정확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그 되물음이 쌓이면, 사업부장은 결정한 다음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결정하기 전에 찾아오게 된다. 지난 편지에서 이야기한 그 회의실에 들어가는 방법이, 사실은 여기에 있다.
차별화는 특별한 프로젝트나 대단한 경력에서 오지 않는다. 매주 반복되는 평범한 요청 앞에서 무엇을 묻느냐, 거기서 갈린다.
이번 주에 해볼 것다음에 채용 요청을 받으면, 공고를 올리기 전에 이 질문을 한 번만 던져보라. 상대가 답을 준비하지 않았다면 — 그것은 되물을 가치가 있는 요청이었다는 뜻이다.
오늘의 문장다음 편지 예고 — Vol.6 · 연재 ③
다음 편지에서는 불편한 이야기를 하겠다. AI가 이미 가져간 HR 업무가 무엇인지, 냉정하게 하나씩 짚어볼 생각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대체가 아니다. 같은 도구를 모두에게 똑같이 주었는데도 격차는 오히려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를 다루겠다.
HR이 아닌 분들께도 오늘 이야기가 닿았기를 바랍니다. 요청을 받아 적을 것인가, 되물을 것인가 — 이 갈림길은 어느 자리에나 있습니다. 읽으시면서 떠오르는 생각이나 반론이 있다면 답장으로 알려주십시오. 다음 편지에 반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같은 AI를 쓰는데, 격차는 벌어진다”
안녕하세요? 멘토라이브러리 대표 전준수입니다. 지난 편지에서는 “한 명 더 뽑아주세요”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무엇을 묻느냐에 따라 HRBP의 역할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오늘은 예고해 드린 대로 AI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다만 이야기가 예상과 조금 다른 곳으로 갈 것 같습니다. AI가 무엇을 가져갔는지 정리하다 보니, 더 먼저 짚어야 할 것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그동안 경험과 연차로 조직을 떠받쳐온 분들이 서 계셨습니다.
지난 편지 끝에 이렇게 예고했다. AI가 이미 가져간 HR 업무를 냉정하게 짚어보겠다고. 먼저 그 이야기부터 하겠다. 채용에 AI가 들어오고, 평가에 데이터가 활용되며, 조직 진단이 자동화되고, 며칠 걸리던 보고서가 몇 분 만에 만들어진다.
이것이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는 근거도 있다. 데이브 얼리치는 1987년부터 약 5년 주기로 전 세계 HR 전문가 수만 명을 대상으로 HR 역량 연구를 진행해 왔다. 그 연구가 거듭되는 동안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 과거 모델에서 ‘운영 실행자(Operational Executor)’로 불리던 역량이 ‘기술 지지자(Technology Proponent)’로 대체된 것이다. HR 역량 모델에서 ‘운영 실행’이라는 항목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이것 자체가 핵심은 아니다. 우리 모두 이미 체감하고 있는 변화이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는 무엇이 사라졌느냐가 아니다. AI 이야기가 나오면 어김없이 “AI가 내 일을 빼앗을까”라는 질문이 등장한다. 중요한 질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주목해야 할 변화가 있다.
더 즉각적이고 더 중요한 변화는 조직 내부에서 일어난다. 같은 팀, 같은 직무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성과 격차가 극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한다. 직업이 사라지는 것은 먼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옆자리 동료와 나 사이의 격차는 이미 벌어지고 있다.
평등한 도구가 격차를 벌린다
과거에는 뛰어난 사람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의 양에 한계가 있었다. 하루는 24시간이고, 시간과 정보와 도구가 모두 희소했다. 이런 제약이 뛰어난 사람과 보통 사람의 격차도 일정 수준에서 묶어두었다. AI는 바로 이 제약을 풀어버렸다. 정보 처리, 문서 작성, 분석 같은 지식 작업에서 시간과 스케일의 한계가 거의 사라졌다. 그래서 결정적인 역설이 생긴다.
AI는 누구에게나 같은 비용으로 열려 있다. 그런데 바로 이 평등한 접근이 격차를 더 벌린다.
AI는 증폭기다
좋은 음악을 증폭하면 더 훌륭한 음악이 된다. 그러나 음정도 박자도 맞지 않는 음악은 아무리 키워도 좋은 음악이 되지 않는다. AI도 그렇다. 역량 있는 사람을 증폭하면 탁월함이 커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증폭하면 평범함이 커질 뿐이다.
숫자로도 확인된다. OpenAI는 상위 5% AI 활용자가 일반 사용자보다 약 6배 더 적극적으로 AI를 활용하며, 코딩 분야에서는 그 차이가 17배에 달한다고 보고했다. 도구가 같아도 결과가 같지 않은 시대다. 그리고 그 격차를 가장 아프게 겪는 쪽이 있다.
그런데 왜 시니어인가
AI를 가장 빠르게 흡수하는 쪽은 디지털에 익숙한 주니어인 경우가 많다. 반대로 그동안 “경험”과 “연차”라는 희소 자원으로 우위를 지켜온 시니어는, 바로 그 희소성이 AI로 흔해지는 순간 우위의 근거를 잃는다. AI가 시니어의 강점을 평준화하고, 주니어의 약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AI 교육을 진행한 어느 기업에서, 20년 차 팀장이 조용히 말했다.
그의 질문은 AI 활용법을 묻는 것이 아니었다. AI 시대에 시니어가 먼저 잃기 쉬운 것은 일이 아니라, 자신의 경쟁력에 대한 확신이다.
격차를 방치하면 벌어지는 일
격차가 생기는 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방치된 격차다. 격차를 개인의 역량 부족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조직이 어떻게 학습과 확산의 기회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① 지식의 사유화
AI를 잘 쓰는 시니어는 자신의 노하우를 프롬프트와 워크플로로 정교하게 다듬는다. 그런데 그 노하우가 개인의 “무기”가 되는 순간, 조직에 공유되지 않고 사유화된다. 과거에는 경험이 자연스럽게 후배에게 전수되었지만, AI 시대의 노하우는 프롬프트와 워크플로 안에 잠겨 개인에게 남는다.
한 기업의 HR 팀장은 AI를 활용해 인터뷰 질문 생성, 후보자 평가, 제안서 작성까지 모두 자동화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프롬프트를 아무에게도 공유하지 않았다. 팀원들은 결과만 받았고, 방법은 배우지 못했다. 그는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었지만, 동시에 가장 대체하기 어려운 사람이 되었다.
② 역할 정체성의 위기
시니어의 자리를 떠받쳐온 것은 “나는 이 일을 오래, 많이 해봤다”는 경험의 우위였다. AI가 분석과 작성과 검토를 대신하면서 그 우위가 흔들린다. 앞서 20년 차 팀장이 던진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성과가 떨어지기 전에 먼저 흔들리는 것은 ‘나는 이제 무엇으로 인정받아야 하는가’라는 자기 확신이다.
③ 번아웃과 이탈
역설적이게도 AI로 생산성이 오른 핵심 시니어에게 조직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실제로 한 기업은 AI를 도입한 뒤 3명이 담당하던 업무를 2명이 처리해도 당장은 문제가 없어 보였다. 대표는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인력을 줄였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핵심적인 판단과 의사결정, 조직 내 조율은 여전히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줄어든 인력의 공백까지 메우면서 그 시니어의 부담은 훨씬 커졌다. 결국 그는 번아웃을 호소하며 회사를 떠나겠다고 했다. 같은 수준의 인재를 영입하려면 훨씬 높은 조건이 필요했다. 그가 맡고 있던 판단과 노하우, AI 활용 방식까지 함께 사라졌기 때문이다. 인건비를 절감하려던 결정이 오히려 더 큰 비용으로 이어졌다.
기업 앞에 놓인 두 갈래 길
격차가 드러날 때 기업은 두 갈래 길에 선다. 그리고 이 선택이 조직의 미래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른다.
| 첫 번째 길 | 두 번째 길 |
|---|---|
| “AI로 사람을 줄이자” | “AI로 생산성을 재설계하자” |
|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지만, 가장 위험한 선택이다. 감축을 예상하는 조직에서 직원들은 몰입 대신 생존 모드로 들어간다. | 기술을 사람을 대체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의 역량을 확장하는 도구로 본다. 기술 전환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기업은 대부분 이쪽이었다. |
| 가장 먼저 떠나는 사람은 핵심 시니어다. 선택지가 많기 때문이다. 6~12개월 뒤 암묵지 유출이 시작된다. | 출발점은 “어떤 AI 툴을 쓸까”가 아니라, “AI에게 무엇을 맡기고 사람은 무엇에 집중할 것인가”여야 한다. |
2026년 3월, Microsoft는 AI 시대에 맞춰 HR 조직을 전면 재편했다. Workforce Planning, Learning & Skilling, Internal Mobility를 아우르는 ‘Workforce Acceleration’ 조직을 신설했다. HR의 역할이 인사 운영을 넘어, 인간과 AI가 함께 일하는 조직을 설계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여기에는 또 다른 과제도 있다. HR이 사업에 가까이 들어갈수록 독립적인 시각이 약해질 위험도 커지기 때문이다. 사업과 가까워지되, 사람과 조직에 대한 독립적인 관점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 AI 시대 HR이 풀어야 할 또 하나의 과제다.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HRBP가 할 일은 시니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가진 시니어의 역량을 조직의 자산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네 가지다.
| 할 일 | 핵심 |
|---|---|
| 개인의 지식을 조직의 자산으로 만들어라 | 프롬프트·워크플로·판단 기준을 공유 자산으로 끌어낸다. 개인의 선의에 기대지 않고, 누구나 활용하고 축적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
| 역할을 재정의하라 | “많이 해본 사람”에서 “결과의 품질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경험이 많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AI가 만든 결과를 맥락에 맞게 판단하고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능력이다. |
| 잘하는 사람에게 일이 몰리지 않게 하라 | 일이 쏠리는 것은 그 사람이 잘해서 생긴 자연스러운 결과처럼 보이지만, 방치하면 조직의 리스크가 된다. 한 사람에게 묶인 지식과 역할을 분산하라.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곧 그 사람을 지키는 길이다. |
| 경험을 조직에 남겨라 | 시니어가 떠나도 그 지식이 조직에 남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도록 통로를 만든다. 개인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산으로 남기는 것이다. |
맺으며
AI 시대의 격차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충격은 시니어에게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 경험과 연차라는 희소 자원으로 우위를 지켜온 사람일수록, 그 희소성이 흔해지는 순간 더 크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서두의 20년 차 팀장에게 돌아가 보자. “저는 이제 무엇으로 인정받아야 하나요?”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을 개인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 조직이 함께 답해야 한다. 그 전환을 돕는 것이 HRBP의 일이다. 시니어가 쌓아온 경험을 반복적인 실행에 묶어두지 마라. 더 중요한 판단과 의사결정에 쓰이도록, 그 쓰임을 바꿔야 한다.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것은 경험 그 자체가 아니다. 경험을 통해 길러진 판단력이다. 이제 할 일은 하나다. 그 판단력이 더 큰 가치를 만들도록 역할을 재정의하는 것이다.
이번 주 질문 하나그 목록을 적어보라. 목록이 길수록 그 사람은 중요한 사람인 동시에, 조직 안에서 가장 위태로운 사람일 수 있다. 문제는 그 사람에게 있지 않다. 그 일과 지식을 한 사람에게만 의존하도록 만든 조직에 있다. 핵심인재를 지키는 첫걸음은 더 많은 일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집중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다.
오늘의 문장다음 편지 예고 — Vol.7 · 연재 ④
오늘 이야기의 결론은 이것이다. AI 시대에 사람의 가치는 경험 그 자체보다,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은 판단을 내리는 데 있다. 다음 편지에서는 그 판단이 실제 비즈니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다루겠다. 경영자가 “그래서 지금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물을 때, 데이터와 분석만으로는 답이 완성되지 않는다. 상황과 맥락을 읽고, 무엇을 선택할지 결정하며, 그 결과에 책임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AI는 더 나은 판단을 돕는다. 그러나 무엇을 선택하고 책임질 것인가는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오늘 이야기는 HR만의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어느 조직에나 “그 사람이 없으면 안 되는” 자리가 있고, 그 자리는 대개 가장 위태로운 자리이기도 합니다. 읽으시면서 떠오르는 생각이나 반론이 있다면 답장으로 알려주십시오. 다음 편지에 반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합니까?”
안녕하세요? 멘토라이브러리 대표 전준수입니다. 지난 편지에서는 AI가 대체가 아니라 격차를 벌린다는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AI가 끝내 가져가지 못하는 영역이 하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판단입니다. 오늘은 그 판단이 실제 회의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다루겠습니다. 숫자를 읽는 것과, 그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 장면을 가정해보자. 어느 HRBP가 AI 분석 툴이 산출한 팀별 이직 예측 리포트를 그대로 경영자에게 가져갔다. 정교한 리포트였다. 이탈 확률이 높은 팀이 색으로 표시되어 있었고, 근거 데이터도 붙어 있었다. 경영자가 물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합니까?” HRBP는 답하지 못했다. 데이터는 있었지만 해석이 없었던 것이다.
데이터는 답을 주지 않는다
많은 HR이 데이터를 보면 답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같은 데이터가 어떻게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는지 보자. 왼쪽은 데이터를 ‘보고’하는 방식이고, 오른쪽은 데이터를 ‘해석’하는 방식이다.
| 구분 | HR 담당자 (분석) | HRBP (해석) |
|---|---|---|
| 이직률 데이터 | “이직률이 높으니 복지 개선이 필요합니다.” | “이탈이 집중된 팀의 리더 패턴은? 재무 손실로 환산하면 얼마인가?” |
| 채용 완료율 | “이번 달 채용 완료율이 70%입니다.” | “30% 지연이 특정 직군에 집중되나? 사업 일정에 미칠 영향은?” |
| 성과 평가 분포 | “S등급 비율이 전년 대비 3% 감소했습니다.” | “어느 사업부에서 집중 감소했나? 리더십 교체와의 상관관계는?” |
왼쪽도 틀린 말은 아니다. 사실을 정확히 전달하고 있다. 다만 경영자가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오른쪽은 다르다. 숫자를 받아 든 순간 이미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있다.
해석이 HRBP의 진짜 역할이다
AI 시대에 HRBP의 역할은 분석에서 해석으로 옮겨간다. 데이터는 누구나 볼 수 있고, AI는 누구나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르다. AI가 만드는 차트보다 그 차트를 읽고 경영자의 질문에 답하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 그 일을 하는 데 필요한 것이 세 가지다.
① 비즈니스 해석력
같은 데이터를 경영에 유의미한 질문으로 전환하는 능력이다. 이탈 가능성이 높은 직군 데이터가 있다고 하자. AI는 이탈 확률을 계산한다. HRBP는 여기서 질문을 바꾼다. ‘이 직군이 이탈하면 이익 손실로 환산해 얼마인가, 우리가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 역량의 정점은 재무 언어로의 번역이다.
핵심 인재 이탈률을 ‘몇 %’로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 인재 1명이 나가면 대체 비용이 연봉의 150%에 이른다. 평균 연봉 1억 기준으로 올해 예상 이탈이 5명이라면, 채용비, 업무 공백, 생산성 저하 등을 합쳐 약 7.5억 원의 비용이 발생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때 경영자는 HR 이슈를 비즈니스 이슈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② 의사결정 설계력
데이터를 전달하는 HR이 아니라, 경영자가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HR이다. “이 데이터가 의미하는 것은 이것이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A와 B이며, 각각의 리스크는 이렇습니다.” 여기까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경영자가 잘못된 방향으로 결정하려 할 때 데이터를 근거로 방향을 조정하고, 결정 이후의 실행 리스크까지 먼저 제시하는 것이 이 역량의 본질이다.
③ 사람 통찰력
수치는 사람을 설명하지만 전부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조직의 분위기, 리더에 대한 신뢰, 문화 적합성, 팀 안의 보이지 않는 역학. 이것들은 여전히 사람의 직관이 필요한 영역이다.
보고를 바꾸는 다섯 문장
이 세 가지 역량은 실제 보고 자리에서 다음 다섯 문장으로 구현된다. 빈칸을 채우는 방식이다.
| 단계 | HRBP 데이터 해석 5문장 프레임 |
|---|---|
| ① 현황 (What) | 현재 데이터가 보여주는 것은 ___이다. |
| ② 원인 (Why) | 이 결과가 나온 구조적 원인은 ___로 판단된다. |
| ③ 영향 (Impact) | 이 상태가 지속되면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은 ___이다. |
| ④ 옵션 (Options) |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A와 B이며, 각각의 리스크는 ___이다. |
| ⑤ 권고 (Recommend) | 현 시점에서 HRBP로서 권고하는 것은 ___이다. |
빈칸이 막막하게 느껴진다면, 앞서 다룬 핵심 인재 이탈 데이터로 다섯 칸을 실제로 채워보자.
① 현황 현재 데이터가 보여주는 것은 핵심 인재 이탈이 특정 사업부 한 곳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② 원인 이 결과가 나온 구조적 원인은 해당 사업부의 리더 교체 직후 보상 경쟁력이 시장 평균을 밑돌게 된 데 있다고 판단된다.
③ 영향 이 상태가 지속되면 올해 약 5명의 이탈이 예상된다. 평균 연봉 1억, 1명당 대체 비용을 연봉의 150%로 보면, 채용비와 업무 공백, 생산성 저하 등을 포함해 약 7.5억 원의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④ 옵션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핵심 인재 대상 보상 재조정(A)과 리더십 코칭 및 경력 경로 재설계(B)이며, A는 즉각적이나 비용이 크고 B는 효과가 더디지만 지속적이라는 리스크가 있다.
⑤ 권고 현 시점에서 권고하는 것은 A와 B를 병행하되, 이탈 임박 신호가 강한 상위 2명에게 A를 먼저 적용하는 것이다.
IBM은 4,000억 원을 아꼈다. 그런데 무엇이 그것을 만들었나
IBM은 AI 플랫폼 Watson을 기반으로 ‘이직 예측 프로그램’을 개발해 특허를 취득했다. 직원이 향후 6개월 안에 이직할 가능성을 사전에 예측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이다. 당시 CEO였던 지니 로메티는 이 프로그램이 약 3억 달러(약 4,000억 원)의 인재 유지 비용을 절감했다고 직접 밝혔다.
하지만 이 성과가 의미 있는 이유는 AI 모델의 정확도 때문이 아니었다. IBM은 AI가 이탈 위험 신호를 감지하면 관리자와 HRBP가 해당 직원과 직접 면담하도록 했다. 그리고 커리어 경로를 재설계하고, 필요한 경우 역할과 보상을 조정했다. AI는 ‘누가 떠날 가능성이 높은가’를 알려주었다. 그러나 ‘어떻게 붙잡을 것인가’는 사람의 몫이었다.
그리고 AI는 객관적이지 않다
반대편 사례도 봐야 한다. 아마존은 2014년부터 이력서를 자동 평가하는 AI 채용 툴을 개발했다. 지원자의 이력서를 분석해 1점부터 5점까지 점수를 부여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2017년 내부적으로 중단되었다. 문제는 AI가 여성 지원자를 체계적으로 낮게 평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원인은 학습 데이터에 있었다. AI는 과거 10년간의 채용 데이터를 학습했는데, 당시 아마존의 기술직 채용은 남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AI는 과거의 채용 패턴을 그대로 학습했고, 그 결과 편향까지 함께 재현했다. 아마존은 일부 항목을 수정했지만, 다른 형태의 편향까지 완전히 제거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결국 프로젝트를 폐기했다.
교훈은 분명하다. AI는 객관적이지 않다. AI는 과거 데이터를 학습할 뿐이다. 데이터에 편향이 있다면 AI는 그 편향까지 학습한다. 그래서 HRBP는 AI가 만든 결과를 받아 들고 물어야 한다. 어떤 데이터를 학습했는가. 어떤 가정을 전제로 하는가. 누구에게 불리하게 작동할 가능성은 없는가. 알고리즘을 믿기 전에, 그 알고리즘이 무엇을 배웠는지 먼저 물어야 한다.
“우리 회사는 데이터 인프라조차 없는데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 많은 분들이 이렇게 말한다. 충분히 현실적인 이야기다. 중견기업의 데이터는 대개 엑셀 파일과 수작업 프로세스 곳곳에 흩어져 있다. 통합 인사 시스템이 없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이들에게 시급한 과제는 거창한 AI 프로젝트가 아니다. 데이터의 기초 체력을 만드는 일이다.
출발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범용 AI 도구로 개인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도구를 쓰느냐가 아니라, AI를 업무에 활용하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데이터로 볼 것인지 정하는 일이다. 이직률, 채용 소요일, 교육 참여율, 성과 분포 같은 핵심 지표를 정하고 계속 추적한다. 그리고 숫자를 보는 데서 멈추지 말고, 그 숫자가 왜 그렇게 나왔는지 묻는다.
데이터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것은 출발하지 못할 이유가 아니다. 지금 손에 있는 엑셀에서 팀별 이직률과 채용 소요일을 살펴보고, 그 숫자 뒤에 숨은 원인을 찾는 것. 그것이 가장 현실적인 첫걸음이다.
맺으며
서두의 그 회의실로 돌아가 보자. 경영자가 물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 HRBP는 그 뒤로 습관 하나를 들였다. 보고 전에 반드시 두 문장을 먼저 써보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___이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것은 ___이다.’ 이 두 문장을 채우지 못하면 아직 보고할 준비가 안 된 것이다.
AI가 만들어준 분석 결과를 그대로 받아 옮기는 것은 가장 낮은 수준의 활용이다. AI 시대에 정말 중요한 것은 AI와 사람이 일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다. 분석은 넘기고, 의미를 만드는 일은 우리가 쥐는 것. 그 경계를 정하는 사람이 HRBP다.
이번 주에 해볼 것다음 보고 자료를 열기 전에 이 두 문장을 먼저 써보라. 채워지지 않는다면, 그 보고는 아직 숫자일 뿐 해석이 아니다.
오늘의 문장다음 편지 예고 — Vol.8 · 연재 ⑤
여기까지 오면 자연스럽게 드는 질문이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다음 편지에서는 스스로 확인해볼 수 있는 다섯 단계를 드리겠다. 읽는 편지가 아니라 해보는 편지가 될 것이다.
오늘 이야기는 HR만의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숫자를 받아 적는 자리에 계신 분과, 그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말해야 하는 자리에 계신 분은 어느 조직에나 있습니다. 읽으시면서 떠오르는 생각이나 반론이 있다면 답장으로 알려주십시오. 다음 편지에 반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HRBP는 종착지가 아니다”
안녕하세요? 멘토라이브러리 대표 전준수입니다. 여섯 주 동안 함께 걸어온 이 연재의 마지막 편지입니다. 『HRBP의 시대』는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에 서점에 나옵니다.
첫 편지에서 우리는 아픈 질문 하나로 출발했습니다. 그 회의실에 HR은 없었다고. 그 뒤로 채용 요청 앞에서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AI가 만드는 격차를 어떻게 볼 것인지,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그리고 지금 내가 어느 단계에 서 있는지를 함께 짚었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질문을 다루겠습니다. 그래서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HR 관련 웨비나나 컨퍼런스를 진행하다 보면, 자리마다 반복되는 질문들이 있다. “채용만 해오다 보니 HRBP로 성장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사람. “HRBP라는 게 대체 어디까지를 의미하는 것이냐”고 묻는 사람. “어떤 경험을 쌓아야 CHRO까지 갈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 질문의 표현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 안에 담긴 불안은 하나로 모인다. HRBP는 어디까지인가.
이 편지는 그 두려움에 대한 답이다.
HRBP는 종착지가 아니다, 경영을 배우는 플랫폼이다
이 명제는 위로의 말이 아니라 사실에 대한 진술이다. 근거는 세 가지다.
첫째, 사람과 사업을 동시에 다루는 유일한 자리다
재무는 숫자를 다루고, 영업은 시장을 다루고, 개발은 제품을 다룬다. 그러나 HRBP는 사업의 숫자를 읽으면서 동시에 그 숫자를 만들어내는 사람을 설계한다. 사업을 보는 눈과 사람을 보는 눈을 한 몸에 갖춘 자리는 조직에 하나뿐이다. 이것이 경영의 본질과 가장 가깝다.
둘째, AI가 발전할수록 인간 판단의 값이 올라간다
데이터를 정리하고 패턴을 찾는 일은 점점 기술의 몫이 되고 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미묘한 긴장을 읽고, 상충하는 이해관계 속에서 조직 전체에 가장 이로운 판단을 내리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이다. 오히려 자동화가 진행될수록 이 판단의 값은 올라간다. HRBP가 매일 훈련하는 것이 바로 이 판단이다.
셋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경영자로 간다는 것은 개인의 성공이나 출세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최선을 발휘하도록 돕는 시스템을, 더 큰 규모에서 설계할 권한과 책임을 갖는다는 뜻이다. 한 팀에서 열 사람의 성장을 돕던 사람이, 한 조직에서 천 사람의 성장을 돕는 구조를 만드는 자리로 이동하는 것이다.
먼저, 세 가지 질문
경로를 살펴보기 전에 자신에게 물어보자. 정답을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느 쪽에서 더 큰 에너지를 얻는 사람인지 스스로 진단하기 위한 것이다.
Q1. 면접이 끝난 후 “이 사람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까”가 먼저 궁금한가, 아니면 “이 사람이 어떤 리더로 성장할까”가 먼저 궁금한가?
Q2. 조직의 HR 체계가 비효율적일 때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가, 아니면 “사람이나 전략을 바꾸면 해결된다”는 생각이 드는가?
Q3. HR이 사업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숫자로 설명하는 일과, 사람의 성장을 통해 조직이 변화하도록 설계하는 일 중 어느 쪽에서 더 많은 에너지가 나오는가?
단 하나의 정답은 없다. 그러나 어느 쪽에 마음이 기우는지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그 차이가 아래 세 경로 중 자신이 어디에 가까운지를 비춰준다.
강점과 니즈가 만나는 지점 — Sweet Spot
세 경로를 설명하기 전에, 커리어를 설계하는 원리 하나를 정리해두고 싶다. 나는 오랫동안 커리어 상담을 해오면서 이 원리를 Sweet Spot이라 부르며 정리해왔다. 나의 강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조직이 지금 나에게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이 두 개의 원이 겹치는 지점이 Sweet Spot이다.
이 교차점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 지점에서 일할 때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가장 높은 가치를 만들며, 가장 오래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커리어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하나의 경영체로 보고 경영하는 것이다.
세 개의 길
이제 살펴볼 세 경로는 겉모습이 다를 뿐, 모두 이 Sweet Spot 위에서 자신의 강점과 조직의 니즈가 만나는 지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 경로 · 도착지 | 이런 사람이다 | 빠지기 쉬운 함정 |
|---|---|---|
| ① 경영자형 CHRO · COO · 사업부 총괄 | 사업의 숫자와 조직의 구조를 HR로 연결한다. “이 포지션의 공백이 이번 분기 영업이익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가”를 자연스럽게 묻는다. 사업 구조를 빠르게 재편해야 하는 조직에서 가장 빛난다. | “사업을 이해한다”가 “숫자만 본다”로 좁아지는 것. 숫자에만 집착하면 경영자가 아니라 관리자가 된다. 숫자에서 출발해 사람에 도착하는 습관이 둘을 가른다. |
| ② 인재개발 전문가형 조직문화 책임자 · 리더십 개발센터장 | 10년 후 리더가 될 사람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그 사람이 실제로 리더가 되도록 환경과 경험을 설계한다. 리더 명단을 볼 때 “누가 빠졌는지”가 먼저 보인다. | 자신을 “교육 담당자”로 좁게 정의하는 것. 교육은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다. 성과 지표는 하나다 — 내가 설계한 체계에서 리더가 몇 명 나왔는가. |
| ③ 스페셜라이즈드 제너럴리스트형 HR Director · HR 컨설턴트 | 채용·성과·보상·조직설계를 각각 깊이 이해하면서, 그것들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맞물리도록 통합한다. “우리 회사 HR을 처음부터 다시 만든다면?”이라는 질문이 설계도로 발전한다. | “뭐든 다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HR 행정 전반을 떠맡는 것. 이 경로의 역할은 실행이 아니라 설계다. 설계자의 시간을 실행에 다 써버리면 설계할 시간이 남지 않는다. |
각 경로에는 도달점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경영자형은 데이터로 채용 구조를 설계하고 조직의 효율을 수치로 증명한 구글, 인재개발 전문가형은 추상적인 문화 선언을 측정 가능한 행동 지표로 번역해 전 임원의 피드백에 반영한 마이크로소프트, 제너럴리스트형은 채용·보상·성과·문화를 하나의 철학 아래 통합 운영하는 넷플릭스다.
수백 명의 이름이 적힌 자료
그룹 CHRO로 일하던 시절, 그룹에는 인사위원회가 있었다. 이곳에는 국내외 현직 경영자뿐 아니라 장래의 경영자 후보까지 포함해 수백 명에 이르는 인재의 자료가 준비되어 있었다. 각자의 강점과 활용도, 그리고 다음 보직에 대한 계획까지 정리된 자료였다. 현장에서 그들을 직접 만나고 매년 평가를 거치는 모든 과정이 곧 그 후보들을 파악하는 일이었고, 그렇게 쌓인 이해가 “다음에 이 사람을 어디에 세울 것인가”라는 이동의 설계로 이어졌다.
사람을 관리하는 명단이 아니라, 사람의 성장과 이동을 미리 설계해둔 시스템이었다.
세 경로 중 무엇이 더 낫다고 말하지 않는다
각 경로가 빛나는 조건이 다를 뿐이다. 급성장하면서 문화와 리더십이 위협받는 조직에는 인재개발 전문가형이 필요하고, 사업 구조를 빠르게 재편해야 하는 조직에는 경영자형이 필요하며, HR 체계가 부재하거나 비효율적인 조직에는 제너럴리스트형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어느 유형이 우월한가가 아니라, 지금 나의 강점과 지금 조직의 니즈가 어디에서 만나는가다. 다시 Sweet Spot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여섯 주 전 첫 편지를 기억하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아픈 질문으로 출발했다. 왜 HR은 신뢰받지 못하는가?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변명하지 않고, HR이 신뢰를 잃어온 자리들을 하나씩 마주했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며 확인한 것이 있다. 신뢰는 선언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업을 이해하고 사람을 설계하고 결과로 증명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쌓인다는 것.
오늘 살펴본 세 경로는 겉모습이 서로 다르다. 그러나 뿌리는 하나다. 세 경로 모두,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최선을 발휘하도록 돕는 시스템을 설계하기 위한 길이라는 점에서 같다. 경영자형은 사업의 구조에서, 인재개발 전문가형은 사람의 성장에서, 제너럴리스트형은 기능의 통합에서 그 일을 한다. 방식이 다를 뿐, 향하는 곳은 같다. 그러니 어쩌면 이 세 경로 또한 종착지가 아니다. 계속될 여정에서 열리는 또 다른 시작의 문이다.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나는 직무를 하고 있는가, 커리어를 설계하고 있는가?” 나는 세 경로 중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나의 강점과 조직의 니즈가 교차하는 지점은 어디인가. 나는 경험의 질을 높이고 있는가, 시간만 쌓고 있는가. 1년 후 나는 어떤 HRBP가 되어 있어야 하는가.
여섯 주 동안 함께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 연재가 HR을 하시는 분들께는 자기 일의 좌표를, HR이 아닌 분들께는 ‘내 일이 어디쯤 놓여 있는가’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보내주신 답장 하나하나가 다음 편지를 쓰는 힘이 되었습니다.
연재는 오늘로 마무리되지만, 편지는 계속됩니다. 출간까지 남은 몇 주 동안은 책에 담지 못한 이야기와 이 책이 만들어진 과정을 나누어 보내드리겠습니다. 표지와 목차, 예약판매 소식도 이 편지로 가장 먼저 전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될 사람은 입사 3년차에 이미 보인다”
안녕하세요? 멘토라이브러리 대표 전준수입니다. 지난 여섯 편의 연재를 마쳤습니다.
오늘부터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제목은 Talent Perspective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사람을 보는 눈 하나씩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제도나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을 골라야 하는 자리에서 쓰이는 기준들입니다.
그가 주임일 때 한 대답
오래전, 내가 이랜드 교육부에서 신입사원 교관으로 일할 때 들은 이야기다. 입사 3년 차 주임 직원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대표가 물었다. “장래 꿈이 무엇인가요?” 직원이 답했다. “호텔을 경영하고 싶습니다.” 회사는 호텔업과 무관한 곳이었다.
이후 7년이 지났다.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 직원은 이제 차장이 되어 있었다. 대표가 그에게 다시 물었다. “아직도 호텔 하고 싶나요?” 그는 망설임 없이 “네.”라고 답했다. 그해, 이 기업은 강원도의 한 호텔을 인수했다. 첫 해부터 성과를 냈고 이후 호텔·레저 사업이 확장되었으며, 호텔 경영을 꿈꾸었던 그 차장은 해당 사업부의 대표가 되었다.
이 장면에서 흔히 보는 것은 꿈을 이룬 한 개인의 이야기다. 그러나 여기에는 세 가지가 겹쳐 있다. 입사 3년 차 주임이 회사와 무관한 사업의 경영을 말했다. 두 직급 위가 아니라 조직도 바깥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7년 뒤에도 대답이 같았다. 그동안 머릿속에서 그 일을 계속 해오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대표가 7년 동안 그 대답을 기억하고 있었다.
셋째가 가장 중요하다. 인재를 발견하는 일은 순간의 안목이 아니라 기억의 문제다. 그날 그 자리에서 알아본 것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7년을 기억하고 있다가 사업이 만들어지는 순간에 그 이름을 떠올리는 것, 그것이 발견이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가 더 있다. 나는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 회사가 그 호텔을 인수하던 해, 나는 교육부 교관이었고 신입사원들과 함께 그 호텔에 있었다. 7년의 기억이 만들어낸 결과 안에 서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그때 나는 이 이야기를 미담으로 들었다. 좋은 이야기, 운이 따른 이야기. 이것이 사람을 보는 문제라는 것은 한참 뒤에야 알았다.
자리를 제안하면 세 가지 반응이 나온다
어떤 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셋으로 나뉜다. “바로 하겠습니다.” / “며칠만 시간을 주십시오.” / 그리고 주저하는 사람.
망설이는 사람은 대개 라인장의 자질이 없거나, 그 일에 자신이 없는 경우다. 경력이나 나이와는 크게 상관이 없다. 스무 해를 일한 사람이 망설이고, 3년 차가 그 자리에서 답을 하기도 한다.
반면 리더의 자질과 열망이 있는 사람은 다르다. 이들은 평소에 웬만한 자리를 늘 시뮬레이션한다. “저 자리에 올라가면 지금 방식이 아니라 이렇게 하겠다.” 머릿속에서 이미 여러 번 그 자리에 앉아본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막연하게 말하지 않는다. 3일만 주면 자기 전략을 문서로 제출할 수 있다.
반응의 차이는 준비의 차이가 아니다. 시선의 차이다. 지금까지 자기 일만 보고 있었는가, 아니면 그 위를 함께 보고 있었는가. 그리고 이 차이는 입사 3~5년이면 이미 드러난다.
싹이 다른 인재의 세 가지 신호
경영자 재목은 ‘싹이 다른 인재’다. 대개 세 가지 신호를 보인다.
하나, 두 직급 위의 일을 한다
일 머리가 좋고 욕심이 있어서 지는 것을 싫어한다. 자기 직급의 일을 하면서도 늘 두 직급 위의 시야로 문제를 본다. 두 직급 위란 팀원이 부서장의 자리에서 보고, 팀장이 본부장의 자리에서 보는 것이다. 바로 위 상사의 자리가 아니라 그보다 한 겹 더 위다. 그래서 이들이 하는 말은 자기 팀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시켜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보이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다.
둘, 시켜서 하지 않고 먼저 제안한다
주도적이기 때문에 지시를 기다리지 않는다. 먼저 제안하고 먼저 시도한다. 조직 입장에서 다루기 편한 유형은 아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 곧 신호다.
셋, 동기들이 그에게 리더십을 준다
가장 정확하면서 가장 덜 쓰이는 지표다. 동기들은 누가 큰 그릇인지 쉽게 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보다 옆에서 보는 것이 정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는 반드시 동기들 사이에 회자되는 한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그 친구가 그때 그 일을 했잖아.” 그 문장이 존재하는지가 핵심이다.
그런데 세 가지 모두 함정이 있다
여기까지는 익숙하실 것이다. 실제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 기준들은 그대로 쓰면 자주 오작동한다.
두 직급 위의 일과 월권은 다르다
자기 몫을 미뤄둔 채 위를 논하는 사람은 그냥 말이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자기 일을 끝냈는지 여부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짜 차이는 시야의 폭에 있다. 싹이 다른 인재는 두 직급 위에서 문제를 보고, 그 자리에서 해결책을 내놓고, 그 해결책이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는지까지 함께 본다. 문제와 해결과 영향이 한 묶음으로 온다.
월권하는 사람은 문제만 지적한다. 또는 해결책을 말하되 그것이 옆 부서와 다음 분기에 무엇을 일으킬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셋이 함께 나오면 시야가 넓은 것이고, 하나만 나오면 시야가 아니라 의견이다.
먼저 제안하는 사람이 모두 먼저 떠나는 것은 아니다
주도적인 유형 안에는 두 갈래가 있다. 능력은 있으나 판단 기준이 늘 자기 이익인 사람과, 일 자체와 그 일의 의미, 그리고 조직을 함께 고려하는 사람이다. 앞의 유형은 조건이 조금만 나아 보여도 움직인다. 연차가 짧고 로열티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직 확률이 두 배 이상 높다는 말은 사실 이쪽에 해당한다.
뒤의 유형은 다르다. 이익이 조금 더 있다고 쉽게 떠나지 않는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을 바꾸고 있는지 알고 있고, 그것을 두고 가는 값을 계산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어야 할 것은 “이 사람이 떠날 확률”이 아니라 “이 사람은 무엇을 보고 결정하는가”다. 제안할 때 자기 성과를 말하는지, 그 일이 조직에서 갖는 의미를 말하는지. 그 자리에서 이미 갈린다. 다만 어느 쪽이든, 발견은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찾아놓고 그대로 두면 다른 회사가 데려간다.
동기의 인정과 인기는 다르다
사람이 좋은 것과 그릇이 큰 것은 별개다. 구별하는 방법은 스토리를 물어보는 것이다.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인정이고, “다들 좋아합니다”에서 끝나면 인기다.
사장감을 데려온 사람은 3년 차였다
이랜드 그룹에서 인사총괄 책임자로 일하는 동안, 사장이 될 만한 인재를 여럿 영입했다. 그런데 돌아보면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그 일을 해낸 사람들은 대부분 입사 3년 차 미만의 채용 담당자들이었다.
이들은 대학 서클을 여러 번 찾아갔다. 기다렸다가 만나고, 또 만났다. 후보자들이 결국 따라온 이유는 조건이 아니었다. 그 담당자들의 열정이었다.
당시에는 이것을 채용 브랜딩의 문제로 이해했다. 좋은 채용 담당자가 좋은 인재를 데려온다는 이야기로 말이다. 지금 다시 보면 그게 아니었다. 그 3년 차들 자신이 싹이 다른 인재였다.
사장감을 알아보고 설득해서 데려오는 일은 원래 인사 책임자의 일이다. 그런데 3년 차가 그 일을 하고 있었다. 두 직급 위가 아니라 그 이상이었다. 시켜서 한 일도 아니었다. 채용 담당자에게 주어진 과업은 정해진 인원을 채우는 것이지, 몇 년을 공들여 한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먼저 제안했고 먼저 움직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동기들 사이에 남았다.
덧붙이면, 그중 한 사람은 이후 여러 법인의 대표를 역임했다. 사장감을 알아보던 3년 차가 결국 자신도 그 자리에 갔다. 세 가지 신호가 한 사람에게 다 있었는데, 나는 그때 그것을 채용 성과로만 기록했다. 신호를 못 본 것이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인재를 놓치는 일은 대개 이렇게 일어난다. 안 보여서가 아니라, 보고도 다르게 해석해서다.
그렇다면 HR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여기까지가 리더의 눈이라면, 이제부터는 시스템의 문제다. 눈 밝은 리더 한 사람에게 의존하는 조직은 그 사람이 떠나는 순간 인재를 못 본다.
첫째, 3일짜리 과제를 상시로 갖춰 둔다
빠르게 성장하던 한 중소기업 대표는 기획 인재를 뽑을 때 최종 후보 세 명에게 회사가 실제로 겪고 있는 문제 일곱 가지를 있는 그대로 설명했다. 그리고 말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해결할지 발표해 주십시오. 마감은 3일 후입니다.”
3일로 정한 이유는 분명했다.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판단은 맞았다. 한 명이 대표의 기대를 훌쩍 넘는 대안을 냈고, 그는 이후 수익 구조 개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직무마다 이런 과제를 서너 개씩 갖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채용에만 쓰는 도구가 아니다. 내부 인재를 확인하는 데 더 유용하다.
둘째, 인재가 드러나는 장을 만든다
다른 기업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대기업 회장이 초급간부 승진자들과 축하 자리를 마련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회장이 물었다. “질문할 것 있어요?” 늘 그렇듯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때 한 사람이 침묵을 깼다. “회장님, 저희도 재단 만들어서 사회공헌 해야 하지 않습니까?”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회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 “본인 생각 정리되면 나에게 의견 주세요.” 몇 달 뒤 그 과장은 사회공헌 책임자가 되었고, 그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은퇴했다.
이 장면에서 흔히 보는 것은 용기다. 그러나 회장이 본 것은 용기가 아니었다. 회장 자신도 그 문제를 오래 고민하고 있었다. 다만 누가 그것을 자기 일로 가져갈지 몰랐을 뿐이다. 그 방에서 그 질문을 한 사람이 한 명뿐이었다는 것. 회장이 본 것은 그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회장이 질문을 받는 자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자리는 의도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월간이나 분기 경영평가회에서 실무 담당자가 직접 성과를 발표하게 하는 것도 같은 장치다. 직원들은 상사가 말할 때보다 동료가 발표할 때 훨씬 큰 자극을 받는다. 여기서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발표마다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이름이다. “이건 ○○님 도움이 컸습니다”가 여러 팀에서 반복된다면, 그 사람이 바로 조직도에 드러나지 않는 경영자 후보다. 앞서 말한 세 번째 신호를 제도로 확인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기도 하다.
셋째, 발견한 다음 90일을 설계한다
앞의 이직 확률 때문이다. 알아본 것으로 끝내면 안 된다. 90일 안에 그 사람에게 자기 이름이 붙는 과제 하나를 주어야 한다. 크지 않아도 된다. 작더라도 본인의 기여가 분명한 성공 경험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5년 뒤에 완전히 다른 자리에 서 있다.
인재가 없는 것이 아니다
경영자들을 만나면 인재가 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런데 푸마의 자이츠는 30세에 CEO가 되었고, 꺼져가던 구찌를 살린 톰 포드는 33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다. 둘 다 내부 발탁이었다. 톰 포드는 회사 안에서조차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다.
웬만한 규모의 조직에는 발탁 가능한 숨은 인재가 있다. 문제는 인재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가 드러날 자리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인재를 찾는 일에는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시간뿐이다. 지난 한 달 동안 리더들의 시간표에서 사람에 쓴 시간이 몇 퍼센트였는지 계산해 보시면, 지금 우리 조직이 인재를 볼 수 있는 상태인지 바로 답이 나온다.
지금 이 글을 읽으시면서 떠오른 얼굴이 있으십니까? 그 사람에 대해 무엇을 보고 그렇게 느끼셨는지 한 줄만 답장으로 보내주십시오. 이 편지에 그대로 회신하시면 저에게 도착합니다. 보내주신 이야기는 다음 편지에서 익명으로 함께 나누겠습니다. 사람을 알아보는 눈은 혼자 기르는 것보다 여럿이 맞춰볼 때 정확해집니다.
다음 편지 예고
다음 주에는 반대편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핵심인재는 갑자기 떠나지 않습니다. 먼저 마음이 떠나고, 그다음에 몸이 떠납니다. 그 사이에 우리가 놓치는 신호가 있습니다.
“핵심인재는 갑자기 떠나지 않는다”
지난주 한 주를 쉬었습니다. 추석 연휴 전에 인사드리려고 이번 호는 화요일에 보내드립니다.
사직서에 적힌 이유는 ‘건강’이었다
30대 초반에 신규 사업을 성공시킨 K브랜드장이 있었다. 실행력이 좋고 헌신된 인재였다. 문제는 몰입이 지나쳐서 자기 관리를 못 한다는 것이었다. 2년이 넘어서자 그는 어려움을 호소했다.
다음 해 상반기 평가 때는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연말에는 자기를 대신할 사람을 세우든지, 두 달 휴직을 달라고 했다. 상사에게는 그만한 사람이 없었다. 이전에도 몇 차례 호소한 뒤에 다시 잘해 왔기에 그 일을 계속 맡겼다.
3년째 되던 해, 그는 건강 문제를 이유로 일방적인 사직 통보를 했다. 석 달 뒤 그는 이미 다른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뒤늦게 인사 임원이 이직 면담을 했을 때 그는 털어놓았다. 상사에게 여러 번 도움을 요청했지만 피드백이 없었다고.
그가 회사를 나간 것은 3년째였다. 그러나 떠나기 시작한 것은 2년째였다. 신호는 세 번이나 있었다. 지난 호에서, 싹이 다른 인재를 찾아 놓고도 그대로 두면 다른 회사가 데려간다고 썼다. 오늘은 그 ‘그대로 두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300번의 징후가 먼저 온다
‘1:29:300 법칙’으로 불리는 하인리히 법칙이 있다. 미국 보험회사 직원이던 하인리히는 산업재해를 분석하다가, 큰 사고 한 건이 나기 전에 평균 29번의 작은 사고가 있었고 300번의 잠재적 징후가 나타났다는 것을 발견했다. 대형 사고는 예고된 것이므로 미미한 단계에서 예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직도 비슷하다. 어느 날 갑자기 이직하는 경우는 드물다. 징후가 쌓이는데 피드백이 없고, 시간이 지나면 어떤 노력도 소용없게 된다. 이직 징후는 직원이 보내는 SOS 신호다. 징후를 일찍 아는 것이 인재 유지의 비결이다. 문제는 CEO나 인사 책임자가 제일 나중에 안다는 점이다.
이직 징후 4단계
동료와 잡담하거나 티타임을 할 때 “출근 시간이 길다”, “워라밸이 안 된다”고 한다. 혹은 “배우자 건강이 안 좋다”, “아이 심리 상태가 불안하다”고 한다. 실은 본인이 불안한 것이다. 이직 초기 증세다.
근무 중에 자주 창밖을 보거나 한숨을 쉬고, 전화를 받으러 종종 밖으로 나간다. 오후 3시쯤 상사가 부르면 움찔한다. 말수가 줄고 얼굴이 어둡다. 지원서를 낸 곳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중기 과정이다.
팀에서 한발 물러서 팔짱을 끼고 있다. 지각을 하고, 그 주기가 점점 짧아진다. 바쁜 중에도 갑자기 연차를 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던 에이스가 ‘예스맨’으로 바뀐다. 이직 중기를 넘어섰고, 외부 면접도 몇 차례 봤다.
상사가 질문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면 지루해하거나 짜증을 내고, 갈등을 드러내기도 한다. 반대로 초연하거나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이직 8부 능선을 넘고 있다. 핵심인재라면 일 속도가 늦어지고 보고서와 일의 품질이 떨어지는 것이 눈에 띈다.
네 단계는 대개 순서대로 온다. 그러나 요즘은 단계를 훅 뛰어넘거나 압축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쿨하게 통보하고 안 나오는 사람도 있고, 회사와 좋은 관계를 지키려고 끝까지 품위를 지키는 에이스도 있다. 그러니 순서를 기다릴 일이 아니다. 하나라도 보이면 바로 움직여야 한다.
이직 사유는 믿지 말라
이직자를 면담하면 “가족이 아프다”, “자녀 문제로 쉬어야겠다”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문제가 있는 경우는 20%를 넘지 않는다. 석 달쯤 뒤에 확인해 보면 대부분 다른 회사 직원이 되어 있다. K브랜드장도 그랬다.
요즘 젊은 세대일수록 이직 이유를 사실대로 말하는 편이다. 그래도 평생 따라다닐 평판을 의식해서 진심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진실은 그가 안전지대에 도착한 뒤에야 알 수 있다. 다른 곳에 취업했거나 진로가 확정된 다음이다. 조사표에 찍히는 이유는 연봉, 복지, 근무 환경이다. 한 단계 더 들어가 보면 가장 큰 이슈는 ‘성장 기회’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떠나려는 이유 뒤의 이유를 먼저 확인한다. 일 잘하고 충성스러운 L대리가 이직을 통보하자 모두 놀랐다. 옮기려는 곳이 지금 직장의 3분의 1 크기였고 연봉도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면담해 보니 회사 안에서는 원하는 직무에서 일할 기회가 없어서, 아내까지 설득해 옮기기로 했다고 했다.
이를 들은 인사 임원은 계열사에서 비슷한 포지션 두 곳을 제안했다. L대리는 반색하며 물었다. “그곳으로 이동 가능해요?” 그는 회사를 떠나려던 것이 아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자리를 찾고 있었을 뿐이다.
갤럽이 직원 몰입도를 측정하는 열한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지난 6개월 동안 직장에서 누군가와 나의 발전에 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직원들은 성장에 목말라 있다. 그 갈증은 다른 직무 경험이나 같은 직무 안에서의 성장 기회로 풀리기도 하고, 의외로 간단한 장비 하나나 인력 한 명 충원으로 풀리기도 한다. 이것을 파악하고 조치하는 일을 개인에게 맡기지 말고 회사 일정표에 넣어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한다.
둘째, 핵심인재 유지를 지표로 만들어 노출한다. 글로벌 기업 콜게이트는 핵심인재가 사의를 표명하면 곧바로 ‘비상 유지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24시간 안에 CEO, COO, CHO에게 경고가 전달되고, 이들은 떠나려는 이유를 밝혀 결심을 돌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핵심인재 유지 목표는 90%이고, 달성하지 못하면 보상 일부를 잃는다.
평가 비중이 10%든 30%든 큰 차이는 없다. 중요한 것은 매월, 매 분기 이 지표를 노출하고 평가하는 것 자체다. 상사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압박이다.
셋째, 마지막 카드는 신뢰하는 상사 두 명이다. 이직을 결심하고 다른 회사와 협상까지 마쳤다면 되돌리기는 매우 어렵다. 원하는 연봉을 맞춰 주겠다고 해도 쉽지 않다. 우수 인재일수록 영입하려는 쪽이 다 알고 협상했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직원들의 반응도 무시할 수 없다.
그때 남은 카드는 그가 신뢰하는 상사 두 명이다. 그중 한 사람이 이직을 고민하다 돌아온 재입사자라면 확률은 더 높다. 우수 인재일수록 최고위층이 움직여야 한다. 단, 빠를수록 좋다.
우수 인재는 갑자기 떠나지 않는다. 우리가 갑자기 알게 될 뿐이다.
연휴가 끝나고 돌아오는 첫 출근날, 팀을 한번 둘러보시기 바란다. 오후 3시에 부르면 움찔하는 사람은 없는지, 의견을 내던 사람이 언제부터 “네, 알겠습니다”만 하고 있는지. 회신으로 들려주십시오.
어느 날 갑자기 놓쳤다고 생각했던 인재가 있으셨다면, 돌아보면 어떤 신호가 먼저 있었습니까? 짧아도 좋습니다. 보내주신 이야기는 익명으로 다음 회차에 소개하겠습니다.
즐거운 추석 보내십시오. 다음 주 목요일(10/1)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멘토라이브러리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신가요?
“네 명 중 세 명은 자기보다 못한 후계자를 세운다”
추석 잘 보내셨습니까. 지난 호에서는 떠나는 사람이 보내는 신호를 이야기했습니다. 오늘은 반대쪽입니다. 남기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당신의 후계자는 누구입니까”
C기업은 리더로 발탁된 사람이 첫 업무 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묻는다. 대부분 당황한다. 이제 막 출발했는데 종착점을 묻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는 두 가지 의도가 있다. 하나는 후계자가 실제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숨어 있다. 당신을 임명한 힘이 누구에게 있는지 생각하라는 것이다. 드러내지 않고 위협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 질문이 정말 불편한 이유는 따로 있다. 많은 리더가 답할 이름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네 명 중 세 명
부모는 자녀가 자신을 뛰어넘기를 원한다. 모든 부모의 바람이다. 리더와 후계자 사이에서는 어떨까. 짐 콜린스는 『Good to Great』에서 놀라운 숫자를 내놓는다. 리더가 자신보다 더 훌륭한 사람을 후계자로 지목하지 않는 경우가 네 번 중 세 번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자신보다 훌륭하지 않은 사람을 세워야 자신의 존재감이 드러난다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어느 개인의 인격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두 조직, 교황청과 군대는 전임자가 후계자를 지목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두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얻은 통찰이다.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지목하긴 어렵다. 그러니 후계자 선정은 언제나 인간의 본성을 뛰어넘는 작업으로 이해하고 실행해야 한다. 의도적으로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본성이 이긴다.
세 가지 질문
가장 단순하고 가장 정확한 기준이다. 그의 역량 때문에 지금 내 자리가 위협받는 느낌이 드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는 당신의 후계자가 아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떠올린 이름은 대개 후계자가 아니라 관리하기 편한 사람이다.
리더는 따르는 사람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따르는 사람만 본다면 리더나 보스나 같다. 핵심은 무엇을 따르느냐다. 리더는 보편적 가치나 대의를 좇기에 그에 동조하는 인재가 모인다. 보스는 자기 이익을 좇아 움직이니, 이익을 따라 지지하고 완전히 복종하는 사람들이 모인다. 이런 조직에서 창의성이나 의미에 관한 논의가 나올 리 없다. 오직 한 단어, ‘실행’만 남는다.
B대표는 수익 관리에 능했다. 비용을 잘 통제했고 하루에도 서너 번 현장을 살필 만큼 부지런했다. 조직에는 늘 팽팽한 긴장이 흘렀지만 성과가 받쳐주었기에 이사회는 문제 없다고 판단했다. 그의 문제는 성과가 나빠졌을 때 드러난다. 불황에도 뭔가는 해야 하는데, 직원들은 그에게 승인받을 엄두를 못 내서 시도 자체를 꺼렸다. 피로도와 무력감이 커졌고 실적은 더 가파르게 떨어졌다. 사업과 경영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경영이 다른 사람을 통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라면, 사업은 자기가 직접 하는 것이다. B대표는 지나치게 사업가에 가까웠다. 그 결과 소통의 초점이 상사를 향하다 보니 윗사람이 아랫사람 일을 하게 되었고, 부하들은 존중받지 못했다. 처음부터 사업하는 사람이 아니라 경영하는 사람을 세워야 한다.
한 가지 함정 — 나와 비슷한 사람
배우자를 고를 때 사람들은 자기에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에게 끌린다. 그런데 후계자를 고를 때는 정반대다.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선호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같은 유형과 일하기가 편하고, 그 사람은 내가 해놓은 것을 무너뜨리지 않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경영자 교체를 통보하는 자리에서 열 명 중 여덟 명이 같은 말을 한다. “6개월만 더 주십시오. 그동안 준비된 것이 이제 효과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인다. “제 후임은 운이 좋아요. 제가 해놓은 것을 누릴 테니까요.”
결과는 어떨까. 후임자의 80% 이상이 전임자의 것을 갈아엎는다. 그렇다고 성과가 나빠지는 것도 아니다. 태풍이 바다를 뒤집어 정화하듯, 새 리더가 오래된 문제를 드러내어 조직을 건강하게 만드는 경우가 오히려 많다. 반대로 전임자와 비슷하여 조직을 이끄는 리더가 세워지면 양적·질적 실적이 하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무리 훌륭한 카피도 원본을 능가할 수 없다. 그러니 나와 다른 사람을 세우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본성을 이기는 것은 제도뿐이다
K대표는 그해 경영 실적을 잘 내지 못했다. 낮은 평가를 통보받고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였다. 1년 더 경영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데 위안을 삼고 다음 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최종 평가를 다시 받고 깜짝 놀랐다. 두 단계 높은 평가였다.
이유는 이랬다. 4분기에 그가 발탁한 본부장 두 명이 단기간에 변화의 가능성을 숫자로 보여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 두 사람은 인재 책임자를 포함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인재였다. 정량 성과는 미흡했지만 인재 발탁을 인정받아, 하위 평가에서 상위 30% 안에 드는 평가로 바뀌었다.
이 회사는 매년 경영자들의 직장생애공헌 평가를 해왔고 핵심 항목 중 하나가 인재 영역이었다. 핵심인재를 발탁하면 인사 기록에 ‘누구의 추천’ 또는 ‘누구의 후계자’라고 표시해 두었다.
우리는 사업에 대해서는 꼼꼼히 피드백한다. 그러나 투자 대비 레버리지가 가장 큰 인재에 대해서는 피드백하지 않는다. CEO의 임기가 끝나면 그에 관한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새 CEO에 집중한다. 후계자 임명을 성과로 인정하는 곳은 거의 없다.
후계자를 잘 세운 것은 반드시 전임자의 성과에 반영되어야 한다. 1년, 2년 뒤 그 후계자가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전임자의 공을 인정해 주는 것이 관례로 들어와야 한다.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는 뜻이다.
가장 바람직한 고백
드러나는 CEO가 자기 시절을 마무리하며 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고백 하나를 이렇게 옮긴다.
영속하는 기업이 되기 위해 CEO가 할 가장 중요한 과업은 미래의 경영자를 준비하는 일이다. 의사결정으로 성과를 내는 사람에게, 미래를 생각할 때 이보다 큰 일은 없다.
지금 당신이 다른 자리로 옮긴다면, 내일 당장 세울 수 있는 사람의 이름이 떠오르는가. 그 이름을 떠올렸을 때 마음이 편안하다면, 한 번 더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회신으로 들려주십시오. 떠올린 이름이 있으셨습니까. 그리고 그 이름을 떠올렸을 때 어떤 마음이 드셨습니까. 짧아도 좋습니다. 보내주신 이야기는 익명으로 다음 회차에 소개하겠습니다.
다음 주 목요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불황은 우수 인재를 데려올 최적의 시기다”
2년 전 한국경제 비즈니스 인사이트에 이렇게 썼습니다.
경제 사이클과 인재 사이클은 같은 방향으로 돌지 않는다. 불황일수록 좋은 인재를 데려올 확률이 높아진다.
그때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의 감원 바람이 거셀 때였습니다. 비용을 줄이려고 사람을 줄이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AI가 조직도를 다시 그리고 있고, 사람을 줄이는 이유 자체가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묻습니다. 지금도 이 말은 유효합니까.
두 개의 사이클
모든 것의 배경에는 거대한 경제 사이클이 있다. 문제는 이 사이클을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 사이클과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인재 사이클이다.
두 사이클은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인다. 경제가 호황이면 인재도 호황이라는 순풍을 타고, 불황은 정확히 그 반대일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 들여다보면 두 사이클은 같은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여기에 기회가 있다.
다른 모든 일을 멈추고 두 사람을 찾았다
CHRO로 일하던 당시, 외식사업부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룹의 핵심 성장 엔진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강했다. 그런데 다음 단계로 도약하려면 내부 역량만으로 채울 수 없는 것이 두 가지 있었다. 맛과 메뉴를 혁신할 전문가, 그리고 점포 확장과 운영을 성공적으로 이끌 영업 전문가. 그 규모의 성장을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이 내부에 없었다.
이사회의 판단은 단순했다. 핵심 인재 두 명을 영입하는 것이 사업부 대표가 직접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본 것이다. 처음에 이사회가 다른 업무를 중단하고 핵심인재를 찾는 일에 집중하라고 했을 때, 그가 당황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데 그가 마음을 먹자 달라졌다. 외식사업부 대표는 본인의 시간을 내고 내외부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각 분야 최고 전문가 두 명을 설득했다. 석 달도 아니고 두 달 만에 필요한 인재를 확보했다. 핵심 인재가 합류하면서 외식사업부의 성장 곡선은 다시 가팔라졌다.
이것이 이 글의 핵심이다. 진짜 해결사는 시장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찾는 일에 시간을 쓰는 사람이 따로 있어야 한다.
비슷한 결정을 한 기업이 또 있다. 호텔 사업을 하던 곳이다. 호텔에는 뷔페를 포함해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식당들이 있었다. 불황이 오자 이 회사도 여느 기업처럼 사업 확장을 중단했다. 대신 불황일수록 핵심 역량과 핵심 사업에 집중해 승부를 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한 단계 더 분석해 보니 답은 분명했다. 맛으로 차별화하는 것, 그리고 그 일을 해내는 사람은 시장에서 확실한 성공 경험을 한 핵심인재라는 결론이었다.
막상 해결사를 영입하려니 찾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인사 책임자는 다른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자기 시간의 80%를 ‘맛 해결사’를 찾는 데 쏟기로 했다. 그렇게 찾아낸 사람은 외식에서 장인으로 불리던 분이었다. 마침 현역에서 막 물러난 시점이었다.
호황이라면 이런 분을 모셔 오는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다. 그런데 막 물러난 때는 본인에게도 다음을 고민하는 시기였다. 두 시점이 맞물릴 확률은 불황에 높아진다. 찾은 뒤에 모셔 오는 것은 또 다른 작업이었고 시간도 꽤 걸렸다. 다만 호황 때와 비교하면 에너지가 훨씬 적게 들었고, 투자한 자원도 크지 않았다. 맛의 특성상 해결사가 들어간 뒤 곧바로 가시적인 성과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진짜 결말은 성과가 아니다. 그분은 지금도 그 자리에서 일하고 있다. 불황에 데려온 사람 한 명이 그 뒤의 모든 사이클을 함께 지났다. 불황이라고 움츠러들지 않고 흐름을 거슬러 올라간 결정이 가져다준 선물이었다.
왜 불황이 기회인가
경제 위기나 불황을 만나면 기업은 채용을 줄이거나 멈춘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다른 일도 함께 벌어진다. 잘나가는 것 같던 기업이 자금 문제로 인수되거나 일부 사업을 철수한다. 의욕적으로 시작한 스타트업이 성과를 내지 못해 다음 투자를 받지 못한다. 핵심인재들이 자기 직장에서 비전 문제로 갈등을 겪는다.
기업 입장에서는 분명히 어려운 시기다. 그러나 수요와 공급의 원리로 보면, 이때가 좋은 인재를 구할 최적의 시기다.
남들이 선발에 겁을 먹고 있을 때가 가치 있는 인재를 찾을 시점이다. 경제 사이클은 피할 수 없지만, 인재 사이클은 반대로 돈다. 그것을 활용해야 한다. 물론 투자할 수 있는 자원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평소에 너무 여유 있는 인력 운영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여유가 없어야 기회가 왔을 때 쓸 자원이 남는다.
그러면 호황에는 무엇을 하는가
호황일 때는 대부분의 기업이 선발을 늘린다. 그러니 우수 인재를 영입할 확률은 줄고 인재 투자 비용은 올라간다.
이때는 정예화에 주의를 기울일 시기다. 잘 맞지 않는 직원들이 미리 적절한 직장을 찾아가도록 돕는 것이 기업에게도 리스크가 적고, 직원 입장에서도 옮길 곳이 상대적으로 많다. 불황이 오면 개인의 방어 기제가 올라가고 기업도 움츠러들어, 인력 운영을 탄력적으로 할 수 없게 된다.
순서를 거꾸로 하는 기업이 많다. 호황에 사람을 늘리고, 불황에 사람에 손을 댄다. 둘 다 가장 비싼 선택이다.
불황기에 비용 절감을 위해 인재에 손을 댄다면 이미 늦은 것이고, 조직의 사기와 생산성만 더 떨어뜨릴 뿐이다. 드러커도 이렇게 조언했다. “비용 절감을 위한 구조조정은 잘못된 것이며, 유일한 비용 절감 방책은 업무를 개혁하는 것이다.”
다시, 지금도 유효한가
2년 전과 지금의 차이는 분명합니다. 그때는 비용 때문에 사람을 줄였고, 지금은 일하는 방식이 바뀌면서 자리의 모양 자체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사이클이 반대로 돈다는 원리는 그대로입니다. 오히려 더 선명해졌습니다.
조직이 흔들릴 때 가장 먼저 움직이는 사람은 갈 곳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갈 곳이 있는 사람이 바로 우리가 찾던 그 사람입니다. 지금 같은 국면에서 자리의 모양이 달라지면, 그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쪽도 그들입니다.
2년 전에는 “불황이니 지금 사라”고 썼습니다. 지금이라면 한 줄을 더 붙이겠습니다.
그리고 그 일에는 추가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은 시간입니다. 지난 한 달 동안 대표님과 리더들의 시간표에서 사람에 쓴 시간이 몇 퍼센트였는지 계산해 보시면, 지금 우리 조직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상태인지 바로 답이 나옵니다.
회신으로 들려주십시오. 지금 우리 조직에 꼭 필요한 ‘해결사’ 한 사람을 꼽으신다면 어느 자리입니까. 그리고 그 사람을 찾는 일에 지금 누가 시간을 쓰고 있습니까. 짧아도 좋습니다. 보내주신 이야기는 익명으로 다음 회차에 소개하겠습니다.
다음 주 목요일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